당신은 언제나 위풍당당

by 정희주

제가 퇴사를 할 때 아빠는 제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러면 저는 "지금은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소일거리도 좀 하고요."라고 말씀드리곤 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요즘의 소일거리는 그림을 공부하는 거예요.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설명해 주는 사람을 '도슨트'라고 하는데요 지금 그 도슨트를 하며 그림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걷는 것이 좀 괜찮아지시면 함께 미술관도 가보고 싶어요. 미술관에 같이 가기 전에 명화가 담긴 편지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아버지 귀가 별로 안 좋으시잖아요. 말로 하는 것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대화가 더 부드러워질 거라고 생각했었죠.


처음으로 아버지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던 화가는 영국 출신의 윌리엄 터너라는 화가예요.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해요. 윌리엄 터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왜 제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세요. 윌리엄 터너는 매우 열정적인 화가였어요. 순간의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불타는 국회의사당의 건물을 불타는 그 현장에서 담아내고, 폭풍우 치는 순간을 그려내기 위해 자신이 배 돛에 묶인 채 그 폭풍우의 현장을 몸으로 경험하기도 했거든요. 그의 작품을 보면 하나같이 격정적이에요. 붉게 타오는 태양, 핏빛으로 물든 바다 이렇듯 자극적인 단어로 연상되죠. 아버지랑 비슷한 면이 많은 열정적인 화가였어요.


image.png?type=w1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 1839


아버지께 <테메레르의 전함>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전장을 승리로 이끈 테메레르 전함이 이제는 낡아서 더 이상 운행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 몸을 이제 혼자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경이어서 예인선에 이끌려 인도되고 있죠. 그러나 보세요. 전함의 기 기품이 어떤지. 비록 예인선에 이끌려 들어오고 있지만 그 기품과 위세는 당당하고 멋스럽게 느껴져요. 전함의 선체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돛대는 고풍스럽게 드높아 있네요. 불꽃을 뿜어대는 기관선처럼 힘이 있지는 않지만 물살을 가르며 운행하는 모습이 우아해 보여요. 이 전함은 얼마나 많은 전투에 참여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승리와 패배를 목격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을 보았을까요?


오른쪽에 붉은 석양이 불타오르면서 테메레르의 전함에 이 말을 전하는 것만 같아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어 고마워요." 이런 찬사의 말이 쏟아지는 것 같아요. 눈이 부시고 또 시려오는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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