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외출하고 들어오면서 좋아하시던 순두부 집에 들렀던 날이 생각나요. 엄마와 두 분이서 자주 사 먹던 곳이라고 여러 번 말씀을 들었어요. 식사를 하면서 엄마 생각이 나셨을까요? "난 잊을 수 없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네 엄마의 마지막 거친 숨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라고 하셨어요.
엄마의 죽음의 결정적 사인이 의료사고라고 생각하고 계셨으면서도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계셨죠.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의 운동기능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에서 소변줄을 연결 시기 위해 구멍을 뚫은 사타구니에 소독 드레싱을 위해 몸을 눕혔던 것이 엄마의 사망의 결정적 이유였죠. 침과 가래를 삼키지 못해 숨을 쉴 수 없어 돌아가셨던 거니까요.
그때 아버지는 자책하셨죠. "의사가 있다고 안심하고 잠깐 자리를 비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옆에서 조심시켰어야 했는데, 내가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젊은 의사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심폐소생술이라도 하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난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그 말캉하고 부드러운 순두부가 목에 걸린 것처럼 아버지는 끅끅 소리를 내며 거리며 눈물을 훔치셨죠.
아... 아버지 아버지 탓이 아니에요.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을 거예요. 의료진도 사과했잖아요. 그리고 무력했던 그들을 아버지는 용서해 주셨잖아요. 물론 허망하기는 해요. 하지만 아버지 탓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자책을 멈추지 못하셨어요. 전 너무나 속상하고 답답했어요. 자신의 탓도 아닌 것에 매달리는 아버지가 애처로우면서도 이제 그만하길 바랐어요. 이젠 엄마의 책임을 그만 느끼면 했어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용서해 주길 바랐어요.
조지 크로젠 <울고 있는 젊은이>, 1916
아버지, 전 가끔 그날을 생각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집에서 의식 없이 죽은 나무처럼 누워계시던 그 모습이 너무나 선선해요. 당시 그 순간이 너무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그날은 잘 몰랐어요. 그 일이 제게 줄 의미를요. 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가시기 전날 내가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아버지의 목소리를 좀 더 예민하게 알아듣고 아버지에게 집중해 드렸다면 그렇게 신장이 많이 손상되어 의식까지 혼미한 채 우리가 마지막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좀 더 온전한 정신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아니 아쉬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네요.
사실 전 저를 원망해요. 그리고 자책해요. 난 아주 나쁜 딸이에요. 이기적이고 내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나쁜 사람. 이렇게 저는 저를 비하하고 채찍질하고 저에게 상처 내고 있어요. 이런 자학이 없다면 견딜 수가 없어요. 나를 학대하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돼요. 벌 받고 싶고 혼나고 싶어요. 가벼워지고 싶은가 봐요. 어쩌면 그리움보다 죄책감을 벗고 싶은 이 또한 이기심인가 봐요.
전 이제 아버지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돼요. 왜 자신을 그렇게 자책했는지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러나 자책은 자해와 같다는 것을 알아요. 손목을 그으며 고통과 함께 오는 쾌감,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저도 제 마음에 자해를 하고 있는 거니까요. 계속되는 자해로 제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어요. 아버지의 마음도 그러셨겠죠? 그렇게 너덜 해지지 않고서는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우셨겠죠.
그리움인 줄 알았는데 그건 자책이자 자해행위였어요. 나를 해치고 있는 거였어요. 이런 저를 보면 아버지는 속상해하셨을 거예요. 어머니도요. 그런 아버지를 보면 속상해하셨을 거예요.
"이제 그만해요. 더는 상처 내지 말아요. 난 당신 이해해요. 그리고 고마워요."라고 말해주셨을 거예요.
전 사랑했던 이가 그리운 날, 저 그림처럼 저렇게 실컷 울어요. 슬픈 만큼 울어요. 내 몸에서 슬픔이 다 빠져갈 만큼 그렇게 울어요. 그리고 나면 그 자리를 다시 사랑으로 채울 거예요. 가까운 이들에게, 아버지를 아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고 사랑을 전할 거예요. 아버지에게 다 하지 못했던 그 사랑, 나를 자책할 힘을 아버지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쓸 거예요. 전 그렇게 계속 사랑을 해 나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