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 심리상담
대학원 시절 중학교 내신 70%로 입학이 가능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고1 때부터 직업선택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한 번쯤 생각하는 직업이 있었는데,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디자이너였다. 회사에서 사무 보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다는 아이들은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불태운다. 문제는 007 가방 같은 무거운 메이크업 박스의 가격이 상당한 고가에다 학원 수강비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부모와 협상을 거쳐서 장비를 마련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꿈꾼다. 그렇게 시작했건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일은 '싫증'을 동반한다. 처음에 재미있던 일들이 점점 반복적인 일들에 지쳐가고 그렇게 학원을 그만두고, 디자이너로서의 꿈도 사그라져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른 일을 찾아갔다.
디자이너가 창의적인 일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꽤 많은 일들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헤어디자이너로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런 이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해외봉사활동을 가는 길에 만났다. 국내외 봉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의사, 간호사, 미용사이다. 어디 가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헤어디자이너 한 명이 있었는데, 하루 100명 가까운 아이들의 머리를 만지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같은 직업이라도 그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저녁이 되어서 일이 마무리가 되었을 때 난 그녀의 인생 스토리가 궁금해져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학업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고 했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학원비도 비싸고 부모님도 허락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미용실 보조로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린 고등학생은 동네 미용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보조로 써달라고 요청을 했고 여러 번 퇴짜를 맞은 후 한 미용실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미용사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눈으로 익히고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머리카락을 치우기도 하고 소소한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했다.
결국 대학도 미용 관련 학과를 갔는데, 수업내용이 실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한 학기 만에 결국 그만두었다고 했다. 동네 미용실에서 여전히 보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용대회에 따라갔다가 우연하게 헤어 모델로 서게 되었고 이후 그때 알게 된 분의 소개로 강남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강남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좀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하나의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친구들과의 만남을 끊고 일에 몰두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3년을 미용실 일을 마치고 마네킹을 앞에 두고 미용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20대의 놀고 싶은 나이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연습을 했다는 그녀가 달라 보였다.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일에 푹 빠진 그녀가 상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서른이 되기 전에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도 일이 지겨운 적이 있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움 20대가 술, 친구들을 멀리하고 긴 수련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을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수련의 장소로 사용했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즐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이십 대 여러 직업 사이에서 방황했던 나로서는 이십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3년을 친구도 만나지 않고 그녀처럼 그렇게 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용사인 그녀를 만나면서 세 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지금의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힘든 과정들을 겪어왔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고되고, 의미가 없어 보이고, 하찮은 일들을 하게 된다. 아울러 처음 시작한 직장이 내가 원하지 않던 곳이라고 해도 그래도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에 익숙해지고 실력을 가지게 된다. 가끔 일이 지겹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어떤 땀을 흘리며 지금 이 자리로 왔는지 기억해보라는 것이다. 당신도 분명히 힘든 수련의 과정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두 번째는 일이 힘들고 의미를 찾기 어려울 때 돈을 받지 않고 누군가를 섬기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아무 대가 없이 일을 했을 때 타인과 함께 할 때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세전째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 사람들과의 관계를 잠시 끊고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독의 시간을 경험해야 한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자기만이 대답을 할 수 있다.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이던, 회사를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이던, 아니면 밤에 퇴근해서 하는 일이던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가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자신의 직업을 토대로 스페셜리스트를 꿈꾸고 있거나,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면 이렇게 하루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종합심리보고서만 몇 년째 쓰고 있던 나 또한 글을 쓰고 싶어서 하루 짧은 시간이라도 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처음보다는 글쓰기가 편해지고 있다.
밥벌이는 시지푸스가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것처럼 지겨워질 때가 있다. 일이 밥벌이에서 끝나지 않고 천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추천 책: 혼자 있는 시간의 힘, 구본형의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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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현은 마음달 심리상담의 13년 경력의 심리학회 상담 심리 전문가 및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두려움 너머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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