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 심리상담
내게는 가망이 없는 일인 것만 같았다. 무슨 생각으로 작가가 되고자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종이 쪼가리 같았다.
투고했던 출판사의 답장이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개념으로 접근한 것은 신선하나 내담자의 치유 과정에 대한 심리학적 서술이나 각 스토리 챕터마다 명확한 심리학 증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컸습니다. "
오래전 상담했던 내담자의 축어록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상담하는 사람들은 상담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다면. 그 오랜 시간 힘들지 않았을 건예요. 일찍 상담받았다면 말이에요." 그 말이 내 마음에 박혀서 떠나지 않고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겠다면서 굳은 비밀로 자신을 미워하면서 인생을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글을 쓰겠다 다짐했다. 심리학에 대한 실용서를 쓰는 것이 출간하기는 것이 낫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러려면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내 관심은 연약하고 삶에 힘겨워하는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심리학 실용서가 아닌 사람 냄새나는 에세이를 내고 싶었다. 상담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소외의 대상이 될 것 같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자 생각했다. 상담실처럼 글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세상의 반짝 거리는 것과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직장의 문은 높았고 어른으로서의 삶은 무겁게 느껴졌다. 어느 곳에서도 내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일도 연애도 관계도 모두 그저 그런 평범의 근사치도 못하는 잉여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나처럼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아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만 싶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출판사의 거절 이후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작은 상담실만이 내 공간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글들은 노트북 속에 숨겨져 있었다.
"당신의 서랍 속에 있는 글을 꺼내보세요."
브런치의 문구에 마음이 갔다. 글을 올려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하자는 생각으로 컴퓨터에 글을 올렸다. 보잘것없어 보였던 내 글에 따뜻한 댓글이 쓰여있었다. 아날로그형 인간에게 사이버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카톡과 다음의 메인으로 글이 올라와 몇 만 명의 조회수를 기록할 때는 글을 숨기고싶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짓말처럼 브런치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 출간 제안이 들어왔다. 블로그로 출판사에서 오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계약의 설레임이 지나 책이 나오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원고를 넘겼으나 봄에 출간을 약속했던 담당자에게 연락이 없었다. 6월이 되어서야 출판사 담당자분이 변경된 것을 알게 되었다.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듯 출간 과정도 그랬다. 가을에 책을 출간을 계획했으나 사람들을 분노와 무기력에 빠지게 한 국내 정치문제로 인해 출간 시기는 미뤄졌다. 처음 기획한 목차는 해체되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했다.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것도 겹쳐져서 새벽이나 늦은 밤에는 모니터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수많은 밤이 지나고 얼마 전 가장 좋아하는 색인 보라색 표지에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그려진 책을 받았고 작가가 되었다. 13년 동안 만났던 내담자들의 이야기와 새벽기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흘렸던 눈물, 좁은 내 마음의 그릇이 깨어져가던 시간들이 담겨있었다. 잊혀질 수 있는 삶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책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읽으며 함께 해준 브런치 구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과 동료들, 임상심리전문가로 성장하게 도와주시고 삶의 모습 그대로 따라가고 싶은 최정윤 교수님, 글쓰는 삶을 인도해주신 한명석 작가님, 신앙의 본을 보여주신 삶의 동반자 한천애 권사님, 상담심리전문가로 성장하게 힘을 주신 류진혜 교수님, 카멜북스 편집부에도 감사드린다.
당신이
인생의 전환기 어두운 사막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면
나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온전한 모습뿐 아니라 어둡고 연약한 모습을 이제는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기를 ...
저자 소개:
안정현. ‘마음 달’이라는 닉네임으로 브런치 매거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전환 관리 전문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디자인, 연극, 춤, 영성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졌다. 언제부턴가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인간의 마지막 여행지는 사람의 내면이라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자마자 사회 공포증 내담자가 찾아와 상담을 시작했고, 아동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내담자들을 만나며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푸석푸석 생기를 잃어가는 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바라보면서 진짜 내가 되어가는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십 년 넘게 정신건강의학과와 대학 부설 심리상담센터에서 근무했다. 자기 사랑에 서툰 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또한 마음의 치유를 통해 뜨거운 심장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심리학회 상담심리전문가, 임상심리전문가
이메일: maumdal7@gmail.com
www.maumd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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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강남에서 미술치료 원데이 클래스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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