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달 심리상담
“나이 들어가는 게 두려워요.”
29세 또는 35세나 39세가 되면 나이 든다는 게 두려워지면서 상담실을 찾는 여성들이 있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한 것 같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어릴 때는 실수해도 괜찮은데 더 이상 그럴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세상의 기준에 따라가지 못해 혼자만 이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젊은 날의 매력이 사라지고 그렇다고 뭔가를 이루지도 못한 것 같은 두려움. 그래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다.
여성의 신체가 가진 매력은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나이 들어 젊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곤 한다. 언젠가 ‘AGING BOOTH’라는 어플로 미래의 내 모습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주름진 얼굴과 머리숱 적은 노인이 나타났다. 자신의 매력을 잃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삶의 시계가 멈출 리는 없다. 이럴 때면 나는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겪어낸 여성 작가들의 글을 읽는다.
슬픔을 위트로 표현하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노 요코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에서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고백했다. 우리 각자의 삶에도 그런 아픈 구석 하나가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이 아픔은 변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나를 힘들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이 있든, 참을 수 없는 불안으로 힘들든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쓴 노라 에프런 역시 사노 요코처럼 이혼을 하고 상처로 힘겨운 시절을 겪어냈다. 이제 노라는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글은 남아 있다. 삶이 힘들고 견딜 수 없을 때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글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툭툭 털어버릴 용기가 없어서 그저 방바닥에 누워버리고 싶을 때 들어오는 글들이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았다.
나의 신념은 ‘털고 일어나자’다.
나는 내 경험을 쾌활한 이야기에 녹여내 소설을 썼다.
_《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중에서
나도 언젠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녹여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솔직하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이가 들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져도, 여전히 삶이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삶의 지혜를 이야기해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
멋있게 나이 든, 본받고 싶은 선생님이 있다. 매달 만나 뵙는 임상심리전문가 슈퍼바이저 교수님은 종합심리검사 보고서뿐만 아니라 상담에 필요한 부분도 자세히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내가 지쳐 보일 때마다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
“실패도 다 자산이 된단다.”
“늦은 게 아니고,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었나 보다.”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봐.”
교수님은 여유롭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으로서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힘을 갖고 계신다. 좋은 어른을 만나서 그분의 태도, 성격, 관점을 배운다는 게 감사하다.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생각만 젊으면 청년이라는 것을 교수님을 만나며 알게 되었다. 교수님은 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드러내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위로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도 말해주었다. 10년 넘게 스승으로 모시면서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웠다. 언젠가 나도 선생님처럼 나이 들고 싶다.
가끔은 나이가 들어가는 게 두렵고 새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슬퍼지지만 그래도 하루의 삶을 사는 데 의미를 둘 것이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보내기에는 삶이 아깝다. 나도 사노 요코처럼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길 소망하며 나이 듦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다.
안녕하세요.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 10월 25일 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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