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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달 안정현 Dec 27. 2019

대리인이 아닌 주체적인 삶

마음 달 심리상담

2020년이라고 생각하니 놀랍네요. 1999년도 세기말을 기다리면서 지구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들으면서 자란 세대입니다. 2020년인데도 살아있다니 예상했던 것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있을 줄 알았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네요.

서울 일러스트 아트페어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별마당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예전부터 관심이 가는 책이었는데 읽기가 망설여졌던 책이 있었습니다. '대리 사회'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읽다 보니 대리 사회는 제가 겪은 회사 생활이나 다름이 없네요. 행위 통제, 언어통제, 사유 통제를 겪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와 닿았습니다. 차를 타지만 브레이크와 엑셀만 조작할 수 있고, 손님이 말을 걸기 전에 말하지 않고, 자신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며, 나의 신체를 되찾는다. 무엇보다 사유하고 발화할 자유를 되찾아 온다. 더 이상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주체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간편한 대화의 방식, 말하자면 ‘순응’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에 각인된 것이다. 누군가 나를 주체로서 대우한다고 해도 익숙해진 몸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어디에서든 주체로서 발화할 수 없게 된다. ‘순응하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세무사, 지금은 없어진 사법고시, 공무원 등을 합격하고자 노력하는 내담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이런 시험들은 좀 더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직업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 아트페어에 가면서 제가 만났던 많은 예술가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정해진 월급은 없지만 자유롭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종합심리검사보고서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쓸 수 있는 자유가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를 쓰고 그 글이 책이 되고 누군가에게 읽히고 제 안의 생각들을 다듬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꼭 개인사업자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순응'적인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힘든 시간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욕망에 따르지 않고 나의 욕망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단 하루 30분의 글쓰기라고 해도 말입니다.


매트릭스처럼 기계에 묶인 삶을 풀어내고 내 삶을 다시 읽고 해석해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대학강사에서 대리기사로 지금은 정미소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를 보면서 쓰기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다고 여겨집니다. 


글쓴이: 안정현

작가이자 상담사 

마음달심리상담 maumd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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