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심리상담
“엄마, 친구가 안 믿는다.”
“야, 누가 믿겠니. 엄마랑 ZE:A 때문에 서울까지 왔다는데.”
“ 밖에 눈 내리는 거 찍어 보내라. 그럼 네 친구가 믿겠지.”
친구와 친구 딸 지아가 서울에 왔다.
한 겨울 친구와 지아는 네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진 명동에 도착했다. 연예인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지하상가에서 들어갔는데 외국인들과 십대 여고생들로 가득 차 있다. 엑소의 용품은 많은데, ZE:A의 것은 종유가 적어서 열심히 찾아봐야 했다. 지아 엄마는 한정판 앨범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물건 같아서 사지 말라고 할까 고민했으나, 지아는 다음 달 용돈을 가불 해서라도 꼭 사고 싶다고 했다. 한정판 앨범을 사고 그들의 로고와 팔찌와 이름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구입했다.
내가 부산에는 제아 앨범이 없느냐고 하자, 인터넷에는 절판되고, 신세계 백화점까지 갔으나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지아를 보면 지아가 태어났을 때가 생각난다. 스무 살에 만나서 캠퍼스 커플로 만난 친구 부부는 아이가 정말 못생겼다며 성형 수술시키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했었다. 다행히 눈 작은 엄마랑 다르게 지아는 눈도 크고, 이제는 꽤나 예뻐졌다. 유치원 때는 새침한 모습이던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더니 반장이 될 정도로 씩씩해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1997을 보면 농구스타나 연예인에 푹 빠져버린 여자 주인공들이 나온다. 연예인의 집 앞을 따라가거나, 콘서트 장에 참석해 열광적으로 춤춘다. 사실 난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연예인에 빠져본 적이 없어서, 연예인 브로마이드와 책받침, 잡지 등을 사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멀리 있는 스타보다는, 내 앞의 학교 선생님이나 주일학교 선생님인 대학생들을 동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뭘 좋아하나 했었다.
그러던 내가 청소년 들을 만나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90년대 HOT와 젝키를 따라다니던 만큼의 광팬들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아이돌이 계속해서 쏟아져서 나오고 유튜브, SNS 볼 것이 많다 보니 선택할 아이돌도 넓어졌다. 몇 년 전 공부 잘하고 책 좋아하는 여자 아이애은 에픽하이의 타블로를 좋아했다. 어떤 아이는 그가 낸 책을 사가지고 꼭 보라며 상담실로 가져오기도 했다. 이젠 하루 아빠가 된 타블로를 보면 ‘당신의 조각들’이랑 책과 그 아이가 떠오른다. 이후 청소년 이 좋아하는 꽃보다 남자, 학교, 상속자들 얼결에 학교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는 꼭꼭 챙겨보는 어른이 되었다.
청소년기에는 동일시 현상의 절정기이다. 부모를 동일시하던 것에도 벗어나 이제는 내가 선택하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연예인’만큼 따라 하고 싶은 데는 이유가 있겠다. 우리에게 친숙한 최고의 연예인은 돈도 많고 대중들의 인기도 많고, 그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아이돌이 나와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으니 그들의 빠른 성공이 부럽다. 부모세대와 다르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미래는 불안하고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먼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은 부모를 비롯해 주변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아울러 밝게 미소 짓는 행복한 연예인들의 모습은 힘겨운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인 세계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아이들의 이상화된 상이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해서 비난하는 말이라도 들으면 참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무엇 때문인지 관심을 가져주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남자 아이들의 경우 게임에 몰두해 있는데, 어떤 게임을 하는지,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알아봐도 좋겠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 아이들의 세계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가 작은 노력만이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담 중에 아이들이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책을 건네고, 음악을 들어보라고 하는 것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상담이 종결되면 아이들은 상담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이 자존감이 상승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자존감은 먼저 타인을 통해 이해받고 있다는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선택에 관심을 가져주는 그 공감 반응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적은 월급을 받아가며 VMD 일을 오랫동안 했었다. 일하는 엄마로서의 미안함과 죄책감도 컸다.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녔고 이제는 모 공연기관에서 준공무원으로 의상파트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명절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일도 많았었다. 그래서 지아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지도 모른다.
지아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내는 얼굴 보고 결혼할 거다. 근데 엄마는 뭘 보고 결혼하였니? 아빠 얼굴도 아니고, 돈도 아닌데.”
“맞다. 엄마 아빠 대학 때 사진 봐라. 왜 만났겠니? 둘 다 답 안 나올걸. 엄청 사랑해서 만났지. 와했겠노.”
그래, 사랑이 답인 것 같다. 지아는 언젠가 ZE:A에게서 관심이 멀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ZE:A를 사랑하는 지아를 위해 왕복 열 시간이 걸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명동 지하상가까지 함께 온 엄마의 사랑은 기억할 것 같다. 스무 살 이전의 기억은 촘촘하게 우리 내면 안에 남아있으니 말이다. 지아에게 가끔은 들여다 볼 수 있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격한 사춘기를 겪어내야 할 시기가 그들 모녀에게도 올 것이다. 그래도 지아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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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현은 마음달 심리상담의 13년 경력의 심리학회 상담 심리 전문가 및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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