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의 문화비축기지 야외극장에서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운데 2시간 동안의 무언극이 시작됩니다.
자연에 감탄하기 보다는 사람구경하기를 즐깁니다. 도쿄역이나 센트럴 파크 중간, 몽마르트 언덕에 박힌듯 앉아 정점관찰을 즐기곤 했었죠.
아무 것도 없이 콘크리트 기둥들이 촘촘히 박힌 사이로 그야말로 모든 류의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
남녀노소, 사농공상,민관군경,LGBT에 로마 황제부터 현대 노숙자까지 등장합니다.
일상의 시간과 그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위를 자신들의 시공간 위에 계속 덧칠하듯이 보여줍니다.
중간에 무곡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들이 입은 유럽풍 코스튬이 등장할 무렵에야 이 공연이 무언극임에도 불구하고 번안극이 아니라 번역극임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주제의식만 살리고 우리 복색으로 표현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이 원작자에 대한 예의라 하더라도 어차피 원작자의 의도는 리얼리즘이지 유러피즘이 아닐테니까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로 열린 야외공연장에서 불멍을 하듯 2시간 동안 인멍(人-)을 했습니다. 정말 힐링되더군요.
아, 하나 더.
이제서 말입니다만 마지막에는 알았어야 했습니다.
저 콘크리트 좌대가 박힌 곳이 사실은 객석이고 우리가 앉은 객석이 실제 야외공연장의 무대였음을 말이죠.
우리는 자리에 앉아 하품을 하거나, 다리를 꼬거나, 몸을 비비 틀거나, 앞으로 숙여 몰입하거나, 고개 숙여 잠이 드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아닐까요? 배우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자극하는 촉매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