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질투, 경멸, 분노에 대한 변명
[도을단상] 악마와 함께 춤을...시기,질투, 분노에 대한 변명
'변명'이란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말하여 밝힌다는 의미입니다.
어제 아침에 저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에 사로잡히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죠.
저는 기본적으로 '일희일비' 하는 스타일입니다. 제 감정에 충실한 편이죠.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나 무아의 개념에도 대체로 공감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웃을 일이 있을 때 웃고, 화낼 일 있을 때 화내면서 제 감정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구분하고 나쁜 감정이 사실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늘어놓습니다만, 이미 '부정적' 혹은 '나쁜'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감정들에 대한 옹호가 크게 설득력이 있게 다가오지는 않더군요.
인간의 불완전성을 - 실수를 저지르고 일관성이 없으며 의지가 약하고 자신의 결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 인간이 바로 나 자신임을 인정하면서도 절망하지 않으며 삶과 자신,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다 혹은 나쁘다의 기준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됩니다. 아무리 기뻐도 너무 기뻐날뛰면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가 있는 것이고, 아무리 화가 나도 차 안에서 중얼거리는 것이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죠. 희노애락 애오욕에 충실하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감정에 대한 저의 예의입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인간이 만든 도구의 도구가 돼 버렸다. 더 멋진 옷이나 더 큰 집을 갖기 위해 점점 더 열심히 일하는게 삶의 전부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 세상과 자신의 삶에 완전히 몰입해 비극적인 일과 기쁜 일, 이상한 일, 평범한 일과 같은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중요하다면 질투나 시기, 경멸과 분노와 같은 감정도 삶의 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몰입해서 독서를 하는 동안, 어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는 이미 사라지고 없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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