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대신 생일잔치를 하기로 한 우리집 가풍
[도을단상] 산 자들을 위한 밥상과 설날 재산이동 게임
저희 집은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제가 독자이고 제 아들이 독자이지만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는 제사는 없을 예정입니다.
아직은 부모님이 다 생존해 계시니 다행인지라, 평상시에 좋아하시는 음식으로 상을 차렸습니다.
아버지의 최애 아아템인 오돌갈비와 엄마의 최애아이템인 각종 푸성귀들, 부모님의 추억이 깃든 꼼장어를 축으로 우리가 좋아하고, 평상시에 즐겨 먹는 음식들로 한 상을 차렸습니다.
설날인 오늘 함께 나누어 마신 전통주는 청명24. 농사의 시작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술로 병오년의 첫날을 여는 건배와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죽을 쑤어 만든 약주를 다시 증류하다보니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고 생산량도 적은 귀한 소주랍니다.
은은한 곡물향과 누룩의 고소함이 바닥을 깔고 그 위로 잘 익은 사과껍질의 상큼하고 은은한 과실향이 쌀 내음과 더불어 피어오르고 나면 비로서 술임을 알리는 알콜이 살짝 치고 올랐다가 텁텁함없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정갈한 맛입니다.
식사와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재산 이동을 위한 윷놀이가 시작됩니다. 피차 물려줄 것도, 물려받을 것도 없는 3대가 오로지 운과 실력으로 부모나 자식의 재산을 뜯어가는 피튀기는 삶의 첫날을 알리는 우리집 설날의 살풍경입니다.
작년에는 아들이 다 땄는데, 올해는 아버지가 따고 제가 잃었네요. 5천원. ㅎ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제사 대신에 생일파티를 아들과 이어갈 생각입니다. 제 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던 그대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일에 모여 그 탄생을 축하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웃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그랗게, 우리 집에서는 망자를 위한 밥상은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산 자들을 위한 밥상과 술상을 차리고 그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던 조상을 기억하고 새기는 밥상만이 있을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와 Y염색체를 먹이고 살찌우는 산 자들을 위한 밥상을 죽은 자들이 마련하고(1회 생일상 식비 30만원 ×2명 ×30년 =1800만원을 사후 생일잔치 비용으로 미리 자식들에게 줍니다) 그 밥상 앞에서 죽은 자를 기억하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실 것입니다.
소파 위에는 증조부모의 사진을 놓았고, TV에서는 3대가 함께 한 식사나 여행 사진이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슬라이드 쇼로 지난 과거를 보여줍니다.
일고보면 4대가 모여서 먹고 마신 설날 아침 풍경이었지요.
슬라이드쇼가 다 끝나자 부모님은 손을 꼭 잡고 또 하루룰 살러 가십니다.
올 한해도 무탈하고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화살기도 한 자락을 그 뒷 모습을 보며 날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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