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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을일기

이별과 별리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이별(離別)과 별리(別離)

"진짜 내 소원이 뭔지 알아? 알려줄까..내 소원이 뭔지..

......

떠나는거!

이 후진 동네에서, 지긋지긋한 아빠에게서,

답답하기 짝이 없는 엄마한테서,

그리고 나와 같은 너한테서..떠나는 거"


연극을 보고 나오니 친구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네요.

무슨 일이야?

ㅇㅇ이 자살했대..아파트 옥상에서..

언제?

오늘....


먼저 멀어지고 이내 헤어지는 이별과 달리, 먼저 느닷없는 헤어짐이 닥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멀어졌다는 실감이 뒤늦게 찾아오는 것이 별리일까요.


여기 있어야 할 이유 하나를 찾지 못한 친구가 떠났음을 아직은 실감치 못한채로 밤새 어둠 속을 뒤척였습니다.


점심에는 10년간 한 솥밥을 먹던, 딸같이 아끼는 직원과 이별을 했습니다.

아무런 일이 없는데 월급만 받아가는 것도 정말 못할 짓이라며 다른 일을 알아보던 그녀가 판교에 있는 IT업체의 기획팀 명함을 가져와 인사를 하더군요.

성실하고 우직하고 끈기있는 친구라 신뢰가 컸는데 안심할만한 소식을 들고오니 너무도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점심을 먹이고 보냈습니다.


여기 있어야 할 이유 하나를 주지 못한 친구를 떠나보냈음을 아직은 실감하지 못한 채로 가을 하늘을 뒤적거립니다.


저녁에는 부모님과 식사 약속이 있습니다.

두 번이나 뇌경색으로 쓰러졌음에도 놀라운 정신력으로 재활에 성공하여 이제 겨우 일상을 회복하는 엄마, 억지로라도 여기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아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엄마에게,

엄마도 잘 아는 아들 친구 하나가 덧없이 세상을 등졌다는 얘기를 차마 못 하겠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걱우걱 밥을 넘기고,

아무리 산 사람은 그렇게 또 살아야한다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이별과 달리

예기치 못한 별리에 선듯선듯 가슴으로 불어대는 서늘한 바람은..추스리지 못한 마음을 몹시도 흔들어대네요...


ㅇㅇ아 잘 자라..

잘 자라 ㅇ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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