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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May 10. 2022

자유, 자유,자유를 부르다

정태춘과 윤석열을 만난 날

<도을단상> 자유, 자유, 자유..자유를 부르다.

정태춘 선생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팬심이 무던히도 없는 제가 겸손한 자세로 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


유신의 세월도 안정되어 잔잔하던 1977년 시인의 마을을 들고 정태춘은 주류 가요계에 입성합니다.

1979년에는 10대 가수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으니 혜성이었겠습니다.


1987년 군부독재에 균열이 생기면서 그는 이른바 대중가수의 얼굴을 버리고 민중가수의 얼굴이 되어 낮게 중얼거리던 음유의 몽환적 세계를 떠나 차안의 피비릿내 나는 현실을 더욱 직접적이고 강렬하고 높은 음조로 토해냅니다.


사전검열.

지금이야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창작의 자유, 노래할 자유, 발표할 자유를 위해 싸운 그에 의해 1996년 사전겸열이 위헌판정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자유의 부재를 위해 그가 싸우던 그 90년대, 웃자란 자유와 문화적 융성과 것멑든 대중과 유리되어 망할놈의 세기말을 저주하듯 그가 가요계에서 멀어지고, 일찍 터뜨린 샴페인은 쓰나미가 되어 1997년 외환사태가 발생합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고향 농부들과의 생활투쟁이 실패로 끝난 2006년 이후로 그의 이름은 잊혀져갔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세상은 출세한 흑인이 고향마을을 잊으려 외면하듯, 온갖 풍요조차도 지루해 할 망정 신산스러운 주변을 둘러보려하지 않았는데, 2016년 다시 그가 나타납니다. 촛불의 가수 정태춘이 촛불집회에 없는 것도 이상하겠지요.


차라리 그가 잊혀지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혁명.

현행 헌법 하에서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몰아낸 이후의 역사가, 그 흔해 빠진 옛날 얘기처럼..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 되고 정태춘 한 사람 정도 세월과 함께 흘러갔대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나타났네요.

우리네 삶에 또 무언가 결핍이 커졌나 봅니다.

우리네 삶에 또 누군가 아픔이 커졌나 봅니다.

우리네 삶에 또 어딘가 소외가 커졌나 봅니다.


윤석열이 35번이나 소리 높여 외친 자유, 자유, 자유를 노래한 정태춘이, 내 삶의 저리게 새겨진 나이테처럼 새겨진 그의 노래가, 자유를 읊조립니다.


삼성수사를 비롯해 강단있는 민완검사 윤석열의 모습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래서 5년 후에 70노구를 이끌고 다시 정태춘이 자유를 노래하며 무대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어령, 이외수, 김지하, 강수연 등 유난히도 문화예술인들이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이 봄에, 아직 살아서 노래하는 정태춘을 만나고 갑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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