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을일기

과도기적 인간의 행복

흔들리다 멀어지다 어둠 속에 깃드는 깨우침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과도기적 인간의 행복

펜글씨를 배우고 타자기를 치다가 컴퓨터와 만나고,

주산과 암산을 배우고도 써 먹을 일이 없는 세상을 살고, 시티폰과 폴더폰을 거치고도 새롭게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살고, 그러고도 태블릿에 노트북에 퍼스컴이 방마다 뒹구는 세월을 살고.


부모님 등골을 뺀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는 하루도 살 수가 없어 수 천 권의 책을 읽으며, 수 천 시간의 강의와 동영상을 보면서 물밀어오는 오늘에 떠밀려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했던 날들과 독재의 그늘아래 숨죽이며 말조심을 하던 시절을 헤치고 나와 무제한의 자유에도 외려 지루해 하는 자식세대와의 만남도 새롭거니와 5대양 6대주를 무대로 700번이 넘도록 비행기를 다닐만큼 다녔고 볼 만큼 보았다고 생각했음에도 아예 없던 세상, 가상공간으로 신대륙의 지평을 넓혀가는 후배들의 모습을 허탈한 웃음으로 지켜봐야 하는 망연함까지도 .


과도기적 인간이었기에 미리 볼 수 있었던 역사의 다음 페이지, 변경의 인간이기에 미리 들을 수 있었던 내밀한 시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늘 아노미 속에 살았기에 비틀거렸을 망정 기꺼이 방황해도 좋았던 날들이었고 항상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였기에 고집스레 존재를 걸어 지켜야 할 관념이 없었던 것까지.


길고도 오랜 체념을 딛고 민족이 일어서는 시기 1970년대에 태어나 가난했을 망정 꿈으로 배부른 어린 시절, 90년대의 자신감과 과신의 뒤에 오는 좌절, 공산진영의 붕괴와 냉전의 해소, 신자유주의와 빈부격차의 극대화와 신냉전, 금모으기 운동과 촛불혁명과 코로나 극복의 대서사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던 것.


어제 67세의 정태춘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 짬짬이 그리고 저녁 내내 몰아서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저는 참으로 행복한 시기에 청춘이었구나. 다행히도 청춘이라 저 흔들리며 멀어져 간 정신없는 세월을 용케도 실족하지 않고 예까지 흘러흘러왔구나..


새삼스러운 감사에 가슴이 괜히 먹먹해집니다.

믿음 주고 일을 맡기고 신뢰를 얹어주신 고객들, 돌아보면 언제나 거기 서서 손 흔들어주던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

그들 덕분이라는 잔잔한 깨우침의 물결이 살짝살짝 발가락을 적시며 밀려갔다 밀려오는 깊고 푸른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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