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벗을 보았습니다. 연극계의 남북교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극단 고래와 이해성 연출과 많은 배우들이 정말 성의 있는 작품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네요.
소극장 무대에 12명의 배우와 반도네온 반주까지 라이브로 제공하는 최고의 성의와 진지함이 충분히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1980년대의 북한을 다룬 이야기는 우리네 6,70년대를 떠울리게 하더군요. 이혼을 주장하는 두 부부의 요구를 받아들인 판사가 실체적인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가 소재입니다. 딸 하나를 둔 부부가 소원해진 관계 끝에 이혼을 결심하고 자신들이 각각 이혼에 도달하게 된 원인들에 대해 인과관계를 주장합니다. 판사는 진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임을 밝히고 설명하고 설득합니다. 우리는 저런 판사 미보유국입니다.
다소 올드한 느낌을 조장하는 반도네온 반주와 변사를 연상케하는 해설자가 극의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다가 막판에 해설자가 바로 두 부부의 딸 호남이임을 밝히고 나섭니다. 그녀가 스무살에 탈북하여 남한에서 결혼하고 아이도 있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이혼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며 판사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막이 내립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이 질문이 남과 여, 남과 북, 배우와 관객,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부수고 난폭하게 우리의 앞에 던져집니다.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삶의 본주가 아니라 상대적이고 상관적인 배경이나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요?
세뇌된 것이든 확신이라고 믿던, 자신이 갖게된 가치관이나 사상이 자신이 내린 결론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라는 현실은 대단히 무섭고 폭력적입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그것이 인과관계라고 믿었던 탈북자와 이혼한 사람들의 팍팍한 삶의 모습이라도 보게 되는 날이면 우리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기존체계의 품으로 안겨드는 약한 존재로만 끝나는 것일까요?
벼랑 끝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자가 진인이라는 울림과 살고자 하는 욕망 이전의 공포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는 밤입니다....^&^;
연출가와 실제 탈북자인 배우와의 질의응답이 끝났는데 대답은 커녕 질문만 안고 돌아서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