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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Dec 03. 2022

대학로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관람 후기

감동도, 웃음도, 재미도 찔끔, 깨작깨작대다 마는 작품

영화 감독이 만든 연극은 어떨까요?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장항준 감독의 작품인데 12년만에 연극판에 다시 돌아왔다고 하네요. 단 며칠동안 커튼콜 촬영이 된다고 해서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무대 모습입니다. 뭔가 왜색창연하지 않나요? 재일한국인 야쿠자 와타난베 신이치의 이야기라는 소재에 걸맞게 일본냄새가 진하게 나는 무대입니다. 뭔가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지요.

말맛이 있는 대사들이 제법 나옵니다. 뭔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높여주는 장치들이 꽤나 있지요. 재일조선인이 야쿠자 세계로 들어갈수 밖에 없는 일본사회의 차별과 핍박, 무너진 가정, 폭력조직의 보스, 자신의 일생을 다룬 영화의 제작을 위한 감독과의 만남. 흥미로운 소재와 민족적 울분과 가정의 해체와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담은 영화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와타나베의 '이 번 영화에 목숨을 걸려고 합니다.'라는 대사는 그런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합니다.

흥미롭고 다채로운 소재와 연기 잘하고 재능있는 배우들, 그리고 재담꾼 감독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하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저예산 영화감독 만춘(12년 전과달리 깔끔하고 잘생긴 젊은 배우가 연기하는 이 영화감독의 이름이 만춘이라는 것도 부조화에 한 몫 했습니다)은 선배를 통해 들어온 감독 섭외에 응해 일본으로 떠납니다. 의로인은 시모노세키의 고택에서 남은 부하 두 명과 그저 상대조직의 암살을 피해 늙어가는 지, 낡아가는 지 알 수 없는 세월을 칩거하고 있는 와타나베 신이치입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야쿠자 조직의 보스가 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만춘을 섭외한 것이지요. 전권을 가진 듯한 만춘의 영화는 하나씩 하나씩 와타나베의 개입으로 인해 너덜너덜해 지고 맙니다. 시나리오, 연출, 주연, 제작 모두를 담당하게 된 와타나베가 결국 상대 조직원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의 죽음 뒤에 만춘은 재인조선인이자 자살한 아버지와 북송선을 탄 어머니의 아들이자, 야쿠자의 두목이자 한 많은 일개인이었던 와타나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막이 내립니다.


이런 줄거리를 이어가는 가운데에 감동과 코믹과 탭댄스 공연과 같은 재미를 담은 요소들이 중간중간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입니다. 저는 일본어를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런 설명이나 언급없이 넘어가는 일본어 대사를 다 알아들울 수 있었는데,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서 어머니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다는 와타나베 신이치의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자 이 모든 이야기의 원천인 대사마져도 아무런 설명없이 일본어독백으로 흘려버리는 용기에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재일조선인의 아픔과 망가진 가정의 설움도 잠깐 나오고는 그만입니다. 부하들이 연기하는 코믹도 잠깐잠깐 피식 웃음을 이끌어내고는 또 그만입니다. 탭댄스 공연과 같은 볼거리나 조폭간의 결투와 같은 장면들도 찔끔, 깨작하고는 그만입니다.

영화에서였다면 회상신으로 처리하면서 얼마든지 처절하게 세트를 꾸미고 여러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재일조선인의 설움과 병들어 죽어가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살 후에 북송선을 타는 어머니, 그리고 와타나베를 충분히 감동적으로 그리면서 눈물을 뽑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폭들의 결투신이나 신바람나는 공연장면도 그럴수 있겠지요. 장항준 감독 스스로가 말했듯이 감독으로서 영화보다 연극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한 것은 바로 연극무대가 가지는 제약과 함축이 주는 힘을 활용해서 놀라운 상상과 몰입을 이끌어 내느냐 아니면 그 힘에 눌려서 허우적대가가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나이' 와타나베는 우렁찬 목소리가 전부이고, 주요 장면 전환은 와타나베가 삐져서 수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채워지지요. 그런 삐짐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이 이 연극의 주제는 아닐 것입니다. 코믹을 그려내는 것도 조폭들이 칼로 손가락을 자르려는 동작 하나로 수렴해 버립니다.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상징을 통해 연극이 가지는 한계를 돌파하고 반복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려는 수법이라고 이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센진'이라는 단어 하나로 재일한국인과 그 가정의 이야기를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사죄의 뜻으로 손가락을 자르려는 동작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조폭세계와 그들이 내세우는 의리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배우들의 열연과 높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해서 하품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대를 처음 보았을 때는 푸짐하게 차려질 한정식 한상차림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는데, 막상 미닫이문이 열리고 나니 죽 한 접시, 샐러드 한 접시, 애피타이저 한 접시, 갈비찜 등속이 나오는데 그 양이  너무 적고 맛이 담담하여 깨작깨작대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밥과 국이 나왔을 때는 반찬거리가 없어서 김치라도 좀 더 달라고 해야하는 뻘쭘함과 부푼 기대감에 구멍이 나버린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궁금한 건, 이 유능한 재담꾼인 장항준 감독이 이 연극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이 연극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1999년, 지금으로부터 이십 수년 전의 주유소 습격사건의 대사로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 연극을 만든거야?

그냥

막이 내리고 처음 허락되는 커튼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저들의 인사를 사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

재미없었으니까요.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덤빈 꼴이 된 것 같아 몹시 머쓱한 마음으로 극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낫겠지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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