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0초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을 임해성 May 23. 2023

<도을단상> 395. 뮤지컬 할란 카운티.

경제학에 대한 행동경제학의 승리

<도을단상> 395. 뮤지컬 할란 카운티.

경제학에 대한 행동경제학의 승리.


세상아!우리가 바꿀게.

뮤지컬 할란카운티를 보았습니다.


1975년 마지막 노예주 캔터키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온 흑인 라일리.

석탄 광맥을 따라 자유로운 사업을 위해 흘러든 사업가 토니 보일.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들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꿈꾸는 노동자들.


모두가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부도덕을 저지르고 서로 배신하며 공작에 역공작이 이어지면서 저항은 싸움이 되고 싸움은 투쟁이 되고 투쟁이 장엄한 주검으로 누운 그 무덤 위에서 싹트는 자유와 인권.


좌파경제학이든, 우파경제학이든 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 합목적적, 이성적,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립니다. 당신의 저녁은 농부의 선의가 아니라 농부의 이기심이 가져온 결과라고.

이렇듯 우리는 오랫동안 돈이 지배하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치중립적인 돈에 탐욕의 가치를 부여한 경제학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행동경제학이 더 우리의 삶을 잘 설명한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은 어눌하고 바보같고 감성적이며 이타적인 모습을 가진 존재임을 압니다.


역사는 아와 피아의 투쟁이기만 할까요.

최대한의 이기심이 공의가 되고 공익이 된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 인간은 협력하고 배려할 줄 알기에 여기까지 온 것일까요.


저 무대 위의 앙상블들은 안재욱의 머리통을 깰 그 날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 안재욱은 수 천만원을 받고, 자기는  만원을 받아도, 좋은 작품을 위해 협력하고 배려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일까요?


완전무결한 경제학적 인간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행동경제학적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발전과 사회구성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적어도 지금은, 21세기의 우리는 그런 인식의 단계로 넘어가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불완전함을 인식함으로써 오히려 완전해지는 행동경제학의 승리의 그 날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이제 노무현을 과거의 인간으로, 이별하며 떠나보냅니다.

.

.

매거진의 이전글 <도을단상> 394. 뮤지컬 허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