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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Jun 25. 2023

<도을단상> 일본 분할 점령 계획과 6.25

자기의 성은 자기가 지켜야

<도을단상> 일본 분할 점령 계획과 6.25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미·영·중·소 연합국은 일본 분할점령에 합의했습니다. 미국이 간토와 간사이, 소련이 홋카이도와 도호쿠, 영국이 규슈와 주고쿠, 중국이 시코쿠를 각각 차지하고 도쿄는 베를린처럼 4개국이 분할통치하는 점령계획이 논의되었죠. 8월13일 미 국무부는 “일본 점령을 위한 국가별 무력구성안”을 마련했습니다.


루즈벨트는 그 이전과 이후의 대통령과는 달리 친소정책을 꾸준히 펼칩니다.루스벨트가 1941년부터 1945년 9월까지 소련에 제공한 군수지원은 항공기 1만4834대, 전차 1만3000대, 트럭 42만7000대, 지프 5만 대, 철강 200만 톤, 상선 95척, 양곡 899만 톤 등 막대한 양이었습니다.


독일 패망 이후에는 폴란드를 넘겨주고, 한반도에 소련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와 참전을 집요하게 요구하죠.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의 대통령, 대공황과 2차대전에 승리한 이 사람이 45년 4월 12일 뇌일혈로 사망합니다. 그의 지지를 받았던 앨저 히스는 나중에 소련의 간첨이었음이 밝혀지는데, 히스는 얄타회담의 주요 참석자이고 유엔의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반면 트루먼은 철저한 반소, 반공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소련 없이 일본에 승리하고자 했으나 일본 분할 점령을 피하려는 일본측은 소련이 8월 8일 참전하고 한반도에 진입하자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일본분할이 아닌 한반도 분할이 결정됩니다.


트루먼이 소련과 공산주의를 배제하려는 노력은 대외적으로는 냉전을 불러왔고, 대내적으로는 매카시의 공산주의자 숙청으로 이어지죠.


2차세계대전은 국제주의(제국주의 기득권 국가들:영국, 프랑스 등등)와 국가주의(제국주의의 막내인 독일과 일본)의 충돌로 시작이 되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국제주의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산화된 소련이 제국주의의 막내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일 패망이후 급격하게 영토적 확장을 노리자 미소영중의 4대국 동맹은 트루먼 집권 이후 점차 미국과 소련의 국가패권을 다투는 국가주의적 관점으로 전환되었다가 이후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로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긴장이 완화됩니다.


6.25는 그런 흐름 속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의 최초의 열전이자 이념전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커다란 피해를 입은 우리 민족과 민족사에 아픈 날입니다.


2차세계대전의 그늘을 완전히 걷어내는 민족사적 과제가 통일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키는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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