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대학로로 나갔습니다. 한 시간동안 5천보를 천천히 걷고 공연장으로 들어가 48번째로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설정한 후 익숙하고도 편안한 어둠에 깊게 몸을 묻습니다.
29살 여자. 설레임의 기억은 첫키스때 뿐이지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지루한 사랑을 10년 동안 한 남자와 이어가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고,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도 결혼하자고 쫒아다니는 남자 하나쯤 있을 수 있고, 원나잍 스탠드로 하룻밤 즐겼던 남자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입니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특별할 것도 없는 그 남자들이 서로 서로 절친이라면?
가벼운 로코로만 생각했던 무대는 이처럼 복잡하고도 미묘하고 불편한 이야기로만, 그것도 정작 여성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채 세 남자들의 이야기와 사랑의 방식으로만 등장하며 무대를 장악해 갑니다..
무뚝뚝하지만 여린 남자. 급한 오줌을 참지 못 하듯 내지르는 남자. 관계와 불편에 대한 고민으로 나서지 못하는 남자..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이 되는 상황이 되면 그 사람 본연의 가치관이 드러나게 되고, 그 순간 더 철저한 자기 자신이 됩니다. 그 맘 알죠..
거울을 봅니다. '사물이 보이는 것 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제서야 진실이, 사랑이,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더 일찍부터, 훨씬 더 가까이, 거기에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불이 켜졌을 때,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 무사함에 안도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