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로 떠났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묽은 여명의 이슬을 맞으며 서서하는 독서를 떠납니다.
낙화암과 고란사를 보고 구드래 조각공원에서 식사를 하고, 정림사지 5층석탑과 궁남지를 돌아보고 금강을 거슬러 공주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채호가 우리 민족을 부여족이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말에 상당한 공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여씨의 왕성을 쓰다 남부여라는 국호로 멸망한 백제의 유적지를 돌아봅니다.
위례와 웅진을 거쳐 사비에 와서야 사비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여족은 사비 혹은 소비를 지명, 도읍지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하고, 혹자의 연구에 의하면 불가르족이라고 불리우며 고추 불가를 세우는 등 오늘날 불가리아의 뿌리가 부여족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가 소비에서 나왔다는 설명을 곁드려서 말이죠.
망하기 직전에서야 남부여라고 부여족의 후손임을 밝히고, 도읍지의 이름을 비로서 사비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한강도 굉장히 크고 훌륭한 강입니다만, 금강도 꽤나 넓고 큰 강임을 새삼 느끼면서 한참을 바라보며 올라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