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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Apr 09. 2023

우울뒤에 감춰진 분노

화가 나지 않는 사람들


image출처_pinterest


우리는 종종 상실한 것들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까지 분노의 감정에 매달린다.
 
그러나 아무리 화를 내고 떼를 써봐야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거나, 때론 들어줘야 할 양육자가 너무나 약한 상태일때 아이들은 부모에게 화 내거나 말걸기를 포기하고 일체의 희망을 체념함으로 부모와 자신을 보호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마땅히 느끼고 매달려야 했을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    
 
오랜시간 우울을 감기처럼 앓아 왔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화를 잘 내지 않았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화가 잘 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화낼 상황인데도 화내지 않는 그녀를 보고 이해할 수 없어 했고, 당사자인 그녀는 그 때 처음으로 '화'라는 감정이 뭔지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됬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분노가 너무 커서 조절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분노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들의 대부분이 분노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은 분노라는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절망과 무기력이 대체하고 있다.  상담실에 오는 많은 분들이 후자에 가까울 때가 많다.  



image_pinterest



희망은 분노를 부른다.  분노의 내면에는 현실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숨겨져 있다.
희망이 있을 자리에 체념과 절망이 자리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우울과 무기력이 그 대표적인 결과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설사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증상이 호전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체념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일이 매우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아주 어렸을때 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체념해 왔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원하는 것 자체가 희미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면 결국 타자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삶을 살게 된다. 

우울과 무기력을 반복적이고 오랫동안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면, 꽤 오랫동안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바람을 체념해 왔늘 가능성이 크다.  약물이 잠시 기분을 나아지게 할수 있지만 양보된 삶을 되찾아 주진 않는다.    참으로 슬픈현실은 이 모든 과정이 어렸을때부터 부모에게 본받아 몸에 밴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화'라는 감정 자체를 알지 못했던 여성은 자신의 부모 또한 매우 순응적이었다고 한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라고 골백번을 다짐했건만, 결국 엄마처럼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자신을 목도하고 대를 이어온 '을'의 삶을 끊어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안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내면과 접촉할 기회가 자주 있을테니, 아주 어려운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네가 지금 이 순간 진짜로 원하는 게 뭐니?'라고 묻고 잠잠히 기다려보자.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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