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의 우월성 이론
“이 차는 훔친 찹니다.”
나는 운전사의 말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토를 달았다.
“그러나 백날 번호를 적어봤댔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깁니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나는 좀 당황했다. 잠시 후 운전사가 저 혼자 소리 높여 웃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하지만 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웃어보려 했지만 약간 벌어진 입가 근육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새끼손가락,하성란>
‘한밤의 택시는 함부로 타는 게 아니다.’ 하성란 작가의 단편소설 <새끼손가락>은 어머니의 잔소리로 시작됩니다. 소설 속 화자는 매번 흘려들었던 그 말을 곱씹어 봅니다. 바로 한밤의 택시 안에서였지요. 회식을 파하고 홀로 택시를 탄 화자에게 동료가 차 번호를 적었다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그 모습을 본 운전자는 이런 농담을 합니다. 이 차는 훔쳤기 때문에 번호를 적어도 소용이 없다. 운전사는 이내 농담이라며 분위기를 전환하지만, 우습기는커녕 긴장감만 더 고조됩니다.
유머란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편감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자고 던진 말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민망한 상황도 발생하지요. 적절하지 못한 유머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유머에 대한 이론은 다양합니다. 그중 우월성 이론superior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대의 불운이나 결함을 보고 웃습니다.그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소설 <새끼손가락> 속 운전사는 아마도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승객이, 그러니까 한밤중에 택시에 탄 술 마신 여성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나는 공포의 희생양이 아니기 때문에 공포심을 소재로 농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에서 분명한 약자였던 화자는 결코 이를 듣고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타인의 문제나 결핍은 종종 유머 소재로 소비됩니다. 그걸 보며 웃음이 나는 건 나는 그렇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머리 분장이 우습다면 그건 내가 머리숱이 많기 때문이고, 뚱보 캐릭터가 우습다면 그건 내가 그보다 날씬하기 때문이지요. 특정 인종 분장에 웃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아닌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수의 웃음을 위해 소비되는 웃음의 소재는 소수의 상처일 때가 많습니다. 2022년 3월 미국에서 열린 아카데미시상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당시 시상식은 생방송으로 진행되었고, 수습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고스란히 송출되었습니다. 바로 유명 배우 윌 스미스가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것입니다.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인 제이다의 머리 스타일에 관해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이다는 표정이 굳었고, 남편 윌 스미스는 무대에 올라 그의 뺨을 치며 내 아내의 이름을 담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은 다양했습니다. 윌 스미스의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습니다. 하지만 제이다는 투병으로 머리를 삭발한 상황이었지요. 내막을 아는 또 다른 이들은 아내를 지키기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이라며 응원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머라는 명목으로 당사자가 받은 상처는 정당화되었고, 이에 많은 이들이 동참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자신은 투병 중이 아니고, 투병 때문에 삭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월하기 때문이지요.
굳이 누군가를 비하하여 웃음을 주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신을 희생양 삼으면 됩니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드라마 속 인물 상아는 완벽한 조건의 소유자입니다.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고 아름다우며 차기 대권후보인 남편을 두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천박하게 자신을 꾸밉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 인주는 상아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요. 이때 상아는 여유를 부리며 이것이 자신의 유머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멍청해 보일수록 사람들이 재미있어한다며 낄낄댑니다. 자신의 사치는 남편을 더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공주는 능력 없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 법이라며 일부러 스스로의 격을 떨어트리고 있음을 고백하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비하는 제일 고급 유머에요.”
자신을 웃음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건 그만큼 여유롭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도 서슴없이 보이고 흔쾌히 장난칠 줄 압니다. 그 결함이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절대 자신을 비하하지 못합니다. 그 비하로 인해 자신의 인격이 무너지고, 가치가 손상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가 아닌 타인을 낮추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자기실현을 이룬 사람의 특징 중 하나로 솔직성을 꼽습니다. 자기실현에 도달한 사람은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장하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데 두려움이 없으므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미 자기실현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전혀 타격감이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단점을 개그로 승화하는 여유를 부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에게도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미국 상원의원을 준비하던 시절 경쟁자는 유세 장면에서 그를 이렇게 비난합니다.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다. 그러나 링컨은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응수합니다. 나에게 두 얼굴이 있다면 굳이 이 중요한 자리에 못생긴 얼굴을 하고 왔겠느냐. 평소 못생기기로 놀림을 많이 받아온 그였기에 이 반응은 좌중의 폭소를 일으켰고, 오히려 호감을 사게 됩니다. 자기 비하 개그는 자존감이 탄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급 유머인 것입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냐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웃자고 한 말에 누군가는 아프고, 심지어 죽음을 고민합니다. 죽자고 덤비는 이유는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인 거지요. 상대가 불편하다면 불편한 것이 맞습니다. 그럴 땐 그만하면 됩니다.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이지요.
누구도 다치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유머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만들기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