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는 강화라는 개념이 있다. 강화는 사람이, 동물이 어떤 상태가 되어 더 많이 행동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집 강아지는 ‘앉아’ 장인이다. ‘앉아’를 정말 잘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3kg이 겨우 넘는 주제에 말을 어찌나 잘 알아듣는지, 손에 간식 한 조각을 들고 눈을 마주치고 ‘앉’ 까지만 말해도 이미 자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도그 쇼의 우승자처럼 근엄한 자세로 나를 바라본다. 앉으라는 행동을 통해 간식을 얻는 경험을 하면 그 뒤로 앉는 행동이 증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강화다.
강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 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는 유기체에게 바람직한 상태를 제공함으로써 행동의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면 노력을 하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노력을 통해 성취가 돌아오고, 또 타인의 감사 인사가 돌아오고, 하다못해 자기 자신이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강화물이 되어 노력의 빈도를 증가시킨다. 우리의 삶에는 보상이 필요하다. 강아지는 간식 때문에 앉고, 학생은 성적 때문에 공부하고, 애인은 사랑 때문에 헌신하고, 직장인은 월급 때문에 일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정적 강화다.
반대로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는 유기체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를 제거해 줌으로써 행동의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얼마 전 바다에서 거북이를 도와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주 작은 꼬마 거북이가 에메랄드빛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는데, 등껍질이 이상했다. 보트를 타고 지나던 한 사람이 거북이를 낚아채 보니, 따개비, 게, 이끼 등 별별 생물이 거북이 몸에 들러붙어 기생하고 있었다. 처음 잡힌 거북이는 버둥거리며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게 한 마리를 등에서 떼어주는 순간 거북이는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마치 내 몸에 들러붙어 있는 이 괴상한 것들 좀 떼어달라는 듯이. 그렇게 등껍질과 배에 붙어있는 해양 생물들을 다 뜯어내자 거북이는 유유히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이 거북이는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 다음번에 고통의 상태에 처할 때 나 좀 도와달라고 먼저 다가올 수도 있다.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에서는 사람들을 독서하게 만들기 위한 황당하고 공감되는 방안이 제시된다.
“책을 안 읽어오면 벌금을 내게 하는 것은 어떤가. 그 벌금을 모아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선생님에게 선물을 사서 드리기로 하면 어떤가. 선물을 하기 싫은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어크로스, 김영민, 2020, p.127>”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스승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체벌을 한답시고 어린 시절 나에게 매를 들었다거나, 친구와 차별을 했다거나, 가난한 나를 무시했다거나, 부당하게 나의 노동력을 착취했다거나. 내가 책을 읽지 않을 때마다 벌금이 걷히고 그 벌금이 그에게 보상이 된다고 하면 그보다 더 끔찍한 결과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책을 읽기만 한다면, 그에게 그 보상이 가는 끔찍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제안이다. 피하고 싶은 상태를 없애준다면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고, 청소를 빼준다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잔소리만 사라진다면 집안일이라도 해놓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적 강화인 것이다.
당신은 좋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좋은가, 나쁜 상태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가. 정말 힘겨운 삶을 살아본 사람은 결코 전자를 선택하기 어렵다. 나쁜 상태 안에 있다면, 좋은 상태가 주어진 들 기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매일이 고통인 사람에게 통장에 매일 10만 원씩 들어온다고 기쁠 리 없다(물론, 없는 것보다 나을 테지만). 그저 이 아픔만 거둬주길 바랄 뿐이겠지.
매일이 힘겨운 사람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값이 요동치는 흥미로운 세상에서 살길 원하지 않는다. 그저 마이너스 상태에서 제로 정도만 유지되어도 감사한다. 특별한 일은 바라지도 않고, 어제와 오늘이 같은 심심한 삶이라면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힘든 상태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 자체를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편두통이 심했다. 머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심장 박동이 관자놀이로 느껴지면서 눈이 둥둥둥 울렸다. 눈이 둥둥둥 울리면 둥둥둥 박자에 맞춰 시야가 확장되었다 축소되었다 했다. 창가에 비쳐 십자가 모양으로 깨지는 빛을 보고 있으면 그 빛이 마치 신비한 조명처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면서 나를 괴롭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러다가 코피가 한번 터져야 두통이 사라졌다.
성인이 되니 코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신경과에서 처방받은 전용 편두통 약을 먹지 않고서는 결코 두통이 가라앉지 않았다. 신경 쓰일 일이 많아지면 한 달에 열흘 이상 누워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하루는 두통이 심해 자기 전에 누워 얼음 찜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머리가 아파서 죽을 수도 있을까? 이렇게 둥둥거리던 머리가 영화 <킹스맨>의 명장면처럼 펑 하고 터져서 몸만 남지 않을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이 고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너무 잦은 두통 때문에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받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약을 먹고부터 두통의 빈도가 현저하게 잦아졌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를 위해 약을 먹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 소화제를 먹는 것과 다른 게 아니다. 결국 나는 과거에 비해 쾌적한 삶을 살게 되었고 아플 때마다 약을 먹는다. 고통의 상태가 제거되자 고통의 상태를 제거해 준 약물을 선택하는 빈도가 증가한 것이다. 바로 부적 강화다.
나는 부적 강화의 개념을 좋아한다. 부정적인 상태가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가? 보상이 될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의 빈도를 증가시켜야 한다.
오늘 하루 사고 나지 않은 것, 병에 걸리지 않은 것, 친구에게 배신당하지 않은 것, 돈을 떼어먹히지 않은 것, 강아지가 오늘도 곁에 숨 쉬고 있는 것, 가족이 안전하게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온 것, 책을 쓸 수 있는 머리와 손가락이 아프지 않은 것, 컴퓨터가 고장 나지 않은 것, 하늘이 무너지지 않은 것, 땅이 갈라지지 않은 것, 집에 오는 길에 소매치기당하지 않은 것, 지진이 나지 않은 것,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은 것. 며칠째 굶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이 의식하지 않고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우리가 특별하게 본다면, 내 인생에 일어날 수도 있었던 불행이 거둬졌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감사라는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
사는 게 감사하지 않은가? 지금 처한 모든 상황이 최악이 된대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서 좋은 일들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음에 감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