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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Feb 24. 2022

고통은 해석이다

정서 이요인 이론

우리는 때때로 웃고 때때로 울며, 그렇게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대체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어떻게 느끼게 되는 걸까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한창 전성기를 누릴 때,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불렸던 노홍철 씨를 통해 유명해진 말입니다. 당시 그는 진심으로 긍정의 힘을 믿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는 괴한이 집 앞에 와서 흉기로 갈비뼈 부근을 찔렀는데, 이유가 방송에 나와서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칼을 맞은 당시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사람 좋게 웃으며 괴한을 달랬다고 하죠. 「무한도전」 긍정 특집편에서는 웃통을 벗고 자기 몸에 얼음을 끼얹어가며 어떠한 상황에서든 웃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긍정 복음’을 전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라는 이 말을 그의 명언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제임스William James와 랑게Carl Lange라는 학자들이 먼저 했던 말입니다. 



그들은 정서를 유발하는 자극을 만나면 우리 몸에서는 눈물, 웃음, 두근거림과 같은 생리적인 반응이 일어나는데, 우리가 그 반응을 알아차리면서 슬픔, 기쁨, 두려움과 같은 정서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이별을 했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생리적 반응이 일어난 거죠.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지각합니다. 즉, 이제 ‘눈물 → 슬픔’으로 정서를 경험하게 되는 거죠. 제임스와 랑게는 이렇게 웃어서 행복하고, 울어서 슬프고, 소리 질러서 화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서 유발에 대한 이러한 가설을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이라고 부른답니다. 


최근에 와서는 정서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생리적 반응이 오면 정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정서가 발현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정서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학계의 정설입니다. 똑같은 생리적 반응이 있어도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정서가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주장은 정서는 생리적 반응이라는 요인과 해석이라는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발된다는 뜻으로 ‘정서 이요인 이론two factor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정서와 관련된 신체 반응은 생각보다 제한적입니다. 눈물이 흐른다거나, 닭살이 돋는다거나, 심장이 뛴다거나,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거나 하는 것들이 정서와 관련된 생리적 반응이지요. 그런데 반응과 특정 정서가 반드시 짝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눈물이 흐르면 반드시 슬픈 것일까요? 연말에 TV에서 하는 시상식을 보세요. 수상한 많은 연기자들이 소감을 말하면서 울지요. 원하는 상을 받지 못해서 슬퍼서 우나요? 나는 대상감인데 최우수상을 받아 분하다면서 우는 걸까요? 아니죠. 기뻐서 우는 거지요. 눈물은 이렇게 기쁨과도 짝을 지을 수 있습니다. 


소름 돋는 건 어떤가요? 저는 일명 ‘환 공포증’이 있습니다. 점들이 깨알같이 모여 있는 모양을 보면 소름이 끼치고 역겨운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마트에서 음료 코너를 지나갈 때는 아주 긴장을 합니다. 개구리알을 닮은 바질 시드가 든 음료수 병을 보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거든요. 하루는 걸어가다가 책상 모서리에 팔이 긁혀서 상처가 났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딱지가 점점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 게 너무 소름 돋고 심지어 토할 것 같아서, 상처 위에 테이핑을 해놓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통 소름 돋는 건 혐오스러운 감정과 짝지어져 있지요. 


그런데 제가 소름이 돋는 또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를 볼 때지요. 전쟁 판타지 영화나 SF 히어로 영화 등에서 우리 편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아군이 나타나 전세를 역전시키는 엄청난 역공을 펼칠 때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블랙 팬서가 “와칸다 포에버!”를 외칠 때, 캡틴아메리카가 “어벤저스, 어셈블!”을 외칠 때, 저는 진짜 팔다리에 소름이 끼치다 못해 머리털까지 다 쭈뼛쭈뼛 서서 심지어 울었답니다. 이때 소름과 눈물은 혐오나 슬픔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벅찬 감동이었지요. 


이처럼 생리적 반응과 정서는 완전히 짝지어져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나에게서 일어나는 생리적 반응을 어떻게 인지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가 경험하는 정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지요. 더튼D.G.Dutton과 아론A.P.Aron의 ‘흔들다리 실험suspension bridge experiment’입니다. 연구진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각각 평지와 흔들다리에 서 있게 했습니다. 잠시 후, 실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이성 실험 진행자의 연락처를 남겨주었지요. 


그러고는 흔들다리에 있던 참가자들이 평지에 있던 참가자들보다 더 많이 연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그 실험에는 별로 궁금해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연락을 했을까요? 뻔하지요. 호감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실험을 하다가 갑자기 왜 호감이 생기고 난리인 거죠? 흔들다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금방 사랑

에 빠지는 ‘금사빠’였던 걸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고, 원인은 바로 흔들다리에 있었습니다. 


높은 산과 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를 건너보셨나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출렁거리면 그 위에 서 있는 우리 두 다리도 후덜덜 떨립니다. 슬쩍 아래를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 내려앉습니다. 뒷사람이 장난친다고 살짝 춤이라도 추면 온몸에 식은땀이 납니다. 왜 그럴까요? 두렵기 때문입니다. 정서와 관련된 생리적 반응을 경험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생리적 반응에 주관적 해석, 즉 의미 부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성의 진행자가 연락처를 줄 때 ‘어, 왜 내 심장이 뛰고 있지? 왜 이렇게 땀이 나지? 혹시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다시 말해, 호감이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된 거예요. 이처럼 두려워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인데, 호감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흔들다리 효과’라고도 부릅니다. 


흔들다리 효과를 이용한 연애 팁은 꽤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기 전에 함께 공포 영화를 보라는 조언이지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정서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을 보고 두근거리는 것을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할 수 있거든요. 귀신의 집을 가거나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요? 


사랑뿐만 아니라 고통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정해진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 고통을 경험합니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학자 니체의 말대로 고통은 해석이다.
우리는 고통 그 자체를 앓는 게 아니라 해석된 고통을 앓는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해석된 고통이지요. 고통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지요. 이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접근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 있는지와 관계없이, 어떠한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나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요. 


아찔한 높이의 낭떠러지에 서서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를 하나의 즐거운 놀이로 여깁니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느끼는 두근거림을 흥분과 기대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를 공포스러운 벌칙처럼 생각합니다. 놀려대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서 나는 못한다고 도망가려 하지요. 이 경우에는 두근거림을 공포와 불안으로 해석한 것

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스트레스로 볼지 도전으로 볼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겠지요?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몸은 격렬히 반응하겠죠. 그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보세요. 기분이 좋을지 나쁠지는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중에서

(신고은 저, 포레스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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