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해서 아픈게 아니라 과해서 아픈 인간관계에 지친 날
가까우면 데이고, 멀면 차갑기만한 직장 내 인간관계. 알맞은 온도가 따로 있는 것일까?
이 전까지는 회사 내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지난해 직장에서 만난 친구를 제외하고는 항상 모두와 선이 있었다. 정확히 직장동료와 사적인 시간을 공유하자 않으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직장동료와 관계의 시간적, 심리적 비중은 늘어갔다. 그로 인해 관계의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최근엔 가까운 관계와의 마찰을 경험하기도 했다.
모두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따뜻함과 냉랭함을 번갈아 비췄을 때는 없던 마찰들이 친절과 온화함으로 모두를 대했을때는 수차례 나타났다. 누군가 나에게 삐지거나 불편한 티를 여과없이 내비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마음으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주었을때는 '다시 멀어지기'를 시전하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가까운 이와의 트러블이었다. 친밀함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수반된다는 트러블의 과정이 나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과해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30대가 넘어서야 직장에서 느끼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재 회사에 생존하기 위해 넓혔던 관계의 바운더리를 줄일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게 되었다.한 동안은 회사의 업무 구조, 조직 내 위치에 따라 관계의 친밀도를 확장했다면, 입사 후 1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직장 내 관계의 기준을 스스로 세울 필요가 있어진 것이다. 정확히는 나를 지키면서 맺는 관계의 온도를 정립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이 결국 내 인생의 질료로 쓰인다'는 김창완의 말처럼 좋은 경험도 나쁜 경험도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질료는 생존을 지속하게 만드는 가능성이다. 따라서 현재 코로나를 거치며 본래 성향보다 과해진 관계 역시 생존을 위한 나의 질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직 후 1년이 지난 현재는 생존을 위한 필요성 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편안함으로 옆을 함께 할 관계가 쌓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