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공간에서 누리는 자연 속 휴식
원주 여행의 시작점이 되었던 '뮤지엄 산', 뮤지엄산의 뜻은 말 그대로의 산이 아니라 'Space Art Nature' 앞의 철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건축가 안도타다오가 뮤지엄 부지 방문 때 느낀 아름다운 산과 자연 속의 아늑함을 토대로 뮤지엄산은 설계되었다. 그래서일까? 일명 게다리 조형물로 유명한 '워터가든'과 조형물을 가장 기대하고 갔음에도,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그 어떤 조형물과 전시보다 공간 그 자체였다. 파주석으로 둘러싸인 뮤지엄 본관의 건물과 복도의 창에서 비치는 자연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은 이동하는 동시에 쉼을 누리게 만들어주었다.
원주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티켓을 보여주면, 뮤지엄산 입장권을 20% 할인받을 수 있다. 뮤지엄산 입장권은 프로그램별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고 가격도 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주어진 관람시간이 많지 않아 야외 가든과 종이박물관 그리고 미술관을 도슨트 투어 할 수 있는 기본권을 구입했다.(기본권 1인 19,000원) 종이박물관과 미술관 둘 다 도슨트를 이용했는데, 미술관 전시 해설이 더욱 기억에 남았다. 종이박물관은 지식을 쌓는 성격이 더욱 강했다면, 전시해설은 작품의 재미를 감상하는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고산금 작가의 작품이었다. 작가는 원인 불명의 실명으로 인해 미국 뉴욕 생활 중 약 6개월간 암흑 속에 놓여있었다. 어두운 세상 속에 갇힌 그녀가 눈이 멀자 정말 궁금한 것은 나가 아니라 세상이었다고 한다. 시각 대신 청각을 활용해 세상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그녀는 TV 세대를 방에 갖다 놓고 뉴스를 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소리는 사라져 버리는 전달체로 시각만큼 충족되지 못했다. 시력이 돌아온 후, 그녀의 욕망의 대상은 문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소재로 인공 진주 더미를 매개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공진주를 언어화하여 작품을 표현하는 그녀의 작품 해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두 가지였다. "모든 언어는 누군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언어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누군가 인공 진주를 떼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의미를 손에 넣을 수는 없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때론 전달자 의도와 관련 없이 상처받기도, 기분이 쉽게 좋아지기도 하는데 이것조차 듣는 사람이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니 조금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를 직장생활에 적용한다면 사회생활 중 가끔은 일부분 흘려버리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삶에 적용까지 이어지는 경험이 흔치는 않은데, 이상하게도 고산금 작가님의 작품에서 느낀 감상평은 꽉 잡고 싶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컸나 보다.
인스타그램용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워터가든 앞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았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워터가든 앞에서의 사진보다 뮤지엄산의 공간 속에서 누리는 자연과 문화 속에서의 쉼이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차후에 재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 더 긴 코스로 이 공간 안에서 누리는 휴식을 천천히 경험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