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아래의 글에는, 부득이하게 약간의 스포가 있음.
0. 시작하며
하나의 글로 엮어보려고 이리저리 고민을 해봤는데 도무지 적절한 제목이 안 나왔다. 나는 보통 제목을 먼저 떠올리고 글을 쓰는 편인데 꽂히는 제목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을 접었다.
산발적으로 적어놓은 낙서 같은 메모들만 바라보다가 이게 내가 느낀 이 드라마의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게임이나 에피소드, 캐릭터를 살펴보면 흥미롭고 나름의 메시지들도 떠오르는데 그걸 모두 이어서 큰 그림이 그려지느냐, 한다면 그건 좀 어려웠다.
1. 납작한 캐릭터와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캐릭터가 매우 단순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캐릭터가 1회에서 9회까지 어떻게 움직일지 우리는 초반부를 보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캐릭터가 룰이 비교적 간단한 게임을 하는 것을 보는 건 스트레스가 덜하다.
이야기는 일단 재밌어야 한다. 재밌어야 사람들이 계속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플롯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그 플롯 자체가 계속 위기(서바이벌)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흡입력 있다.
가뜩이나 전 세계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제멋대로인 캐릭터를 만나 골머리 썩고 있는데, 그니까 현생이 4D인데 복잡한 이야기를 보며 골머리를 썩고 싶진 않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심각하고 복잡하고 의미와 메시지를 잔뜩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은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나만 해도 5개 몰아보느라 새벽 3시에 겨우 취침...)
2. 오징어 게임이 '인간 본연'의 이야기인가
오징어 게임은 인간 본연의 성질과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가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은 위기에서 인간다움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인간 본연'의 이야기가 주로 역시 납작한 남성 캐릭터들에 의해서 진행된다. 그나마 대사가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캐릭터들은 납작한 2D 캐릭터가 되어 역할은 대부분 정해져있고 승자가 되지 못하며, 도구적으로 이용된다. (한 명은 주인공 남성의 '인간 본연'을 각성시키고자
희생되는 역할로 쓰였고. 또 한 명은 주요 남성 캐릭터가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되도록 이 한 몸 바치는 역할로 쓰였고. 그나마 또 한 명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인생의 목적이 무의미하다며 스스로 끈을 놓는, 서사마저 부족한 역할로 쓰였다)
어떤 이야기든 감독의 페르소나가 가장 중요한데, 감독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남성 캐릭터의 입을 빌린다. 이 드라마가 요즘 보기 드물게 인생의 진리와 교훈을 구구절절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형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 진리와 교훈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가 결국 이 이야기의 권력을 쥔 사람이 되는데,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여성 캐릭터는 없다.
제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면 최소한의 양적인 균형이라도 좀 맞춰주었으면 싶다.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하기 위해 표집의 오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닐까. 아닌가?
3. 메시지만 좋다면 수단은 어떻게든 괜찮을 걸까
이 영화는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결국, 인간다움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정말 좋은, 필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수단은 뭐라도 상관없는 걸까?
게다가 이 게임에선, 인간이 극한에 몰렸을 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지 살펴보기 위해 계속 함정에 몰아넣는 듯하다.
일부러 칼을 세팅해 주고, 불을 끄고, 언제든 총을 발포하는 익명의 사람들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너희들이 이래도 서로 찌르는지 안 찌르는지 한 번 보자.
물리적 힘이 약자인 존재가 극한에 몰렸으니 자기 몸을, 성을 재화로 삼을 수밖에 없는지 아닌지 보자.
과연 이런 극단적으로 설계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다,라고 제시하는 것에서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읽어내야 할까.
그래, 이렇게 정글 같은 세상이니 맘 단디 먹고 잘 살자?
누구든 인간 막장에 몰리면 서로 찌르고, 뒤통수치고, 몸을 재화로 사용할 수 있으니 누가 그런 행동을 해도 이해하자?
드라마 속에서 게임 좀 졌다고 무자비하게 죽여놓고선 핑크색 대형 리본이 달린 고운 관을 가져와 사람을 넣어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비록 우리가 설계해 놓은 억지스러운 상황에서 넌 죽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렇게 죽은 너라도 리어카에 척척 싣고 가지 않고 마지막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줄게. 함정을 파놓고, 사람들이 빠지길 기다리고, 빠진 사람들을 눈 가리고 아웅으로 마무리해 주는
이 이상한 광경이 사실은 이 드라마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한 해석은 다 너희의 의도야, 우리는 그럴 의도가 없었어,라고 빠져나가기에 지금은, 너무 21세기이다.
4. 그래서 이정재는 궁극의 선한 인간인가
그래서 어쨌든 간에, 우리 모두가 1회 때부터 예측하듯 이정재는 최후의 승자가 되어 456억을 받는다. 그러나 이정재는 최후의 선한 인간답게 456억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하고, 여전히 찌질하고 불쌍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대신 게임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쓴다. 기껏 자신이 쓴 돈은 빨간 머리 염색 값 정도?
유학 간 딸에게 아빠가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비행기로 들어가던 그가 ‘너희가 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대체 이런 끔찍한 일을 하는지 알아야겠다!'며 다시 다음 게임 참가를 위해 돌아서는 장면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 1이 마무리된다.
그 장면을 보며 내가 육성으로 한 말은 '아니 딸은? 기다리는 딸은 뭔 죄야?'였다. 평생 아빠 노릇이라곤 눈곱만치도 하지 못한 그가 (비록 빨간 머리 아빠지만) 넉넉한 돈을 가지고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간 답지 못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지킨다는 '대의'를 쫓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상담실에 있으면서 부모(대부분 부)에게 상처받은 자녀 내담자의 절반 이상은 다른 사람에겐 좋은 부모를 두었다. 남들 보기에 그럴듯하고, 칭찬받는 가치를 쫓느라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가정 생활을 놓친 사람들 말이다.
그가 결국 오징어 게임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선 다시 게임에 참여할 테고, 정체를 밝히기 위해선 살아남아야 할 텐데, 그럼 그 과정에서 그 때문에 죽게 되는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대의, 메시지에 너무 목숨을 걸게 되면 거기에 잡혀먹게 된다. 인간성이라는 대의를 쫓다가 결국 가장 비인간적이 삶을 살고 있는 오일남 할아버지나 프론트맨이 그렇듯 시즌 2가 나온다면 이정재 또한 메시지에 잡혀먹은 비인간적인 정의의 사도가 되어 있겠지.
정의를 실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비인간적인 존재가 된 오징어 게임의 프론트 맨과 요원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