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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방 Nov 21. 2023

나와 다른 것이 공포가 아닌, 사랑이 되려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요즘 소소하지만 핫한 드라마를 꼽자면

단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아닐까.

특히 나처럼 유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본인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면

여러 가지 마음으로 정주행 했을 드라마. 



이 드라마의 미덕과

추천 포인트는 아주 확실하다.

웹툰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각종 정신질환에 대해서 교과서급으로

친절하게 그리고 친근하게 설명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아주 분명하다.

양극성 장애, 조현병, 공황 장애, 사회불안, 자살 사별,

편집적 망상, 경계선 성격장애, 우울증, PTSD와 같은

병명이 확실한 정신질환부터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폭력적인 도박중독 엄마를 둔

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엄마를 버리는 법,

자신에게만 부여된 일-가정 양립 때문에

자신의 공간을 잃어버린 워킹맘의 고군분투 등

다양한 스펙트럼 상에 있는 우리의 어려움을

쉽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신경증(Neurosis)-경계선(Borderline)-정신증(psychosis)의 스펙트럼 위에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우리의 타고난 기질이나 몸과 마음의 면역 상태,

외부의 스트레스와 그것에 대한 대처 등에 따라

이 스펙트럼 위를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 우리는 신경증 위에 서 있지만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리면,

언제든 경계선과 정신증으로 갈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 드라마는 이 스펙트럼에 대해서

폭넓고,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히 '흔들림 없이' 따뜻하고, 이타적이며, 희생적인

다은이 어떻게 천천히 우울증과 PTSD로 빠져드는지

공들여 묘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대인의 감기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누구도

제대로는 알지 못하는 우울증이 어떻게 오는지.

전 세계 자살률 1위라는 역대급 오명에도,

사실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살과 그 후까지.

다은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천천히 빌드업시킨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미덕인 것 같다.

그리고 박보영은 이 빌드업을 정말 섬세하게 연기했다.

모든 아픔이 그러하든 정신질환에

드라마틱한, 뿅! 하는 완치란 없다.

이 드라마에서도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환자들이 그 후로 시간이 지나도

계속 등장하여 치료를 받고 있거나,

전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다은이 복직 뒤에도 복직 전과는 다른 표정인 부분 등은

사실 드라마적 재미로 본다면 나오지 말아야 할 부분.

왜냐면 사람들은 사이다 꽉 닫힌 결말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런 드라마적 판타지로 소비되기에

우리에게 정신질환은 너무나 가깝고 중요하다.

대사에도 대놓고 등장하듯, 

정신질환은 관리의 병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모든 병이 그렇다.

대표적인 당뇨나 고혈압, 각종 디스크가 그렇고

팔만 한 번 부러져도 거기는 앞으로도 다른 곳보다

쉽게 부러질 가능성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정신질환만이 '탈출해서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할'

어떤 곳으로 생각되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이 드라마는 작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다고.

아침도 오고, 오후도 오고, 밤도 오고, 

하지만 아침도 오는 이 순리처럼

우리의 병들도 그렇게 순리를 따라 흐르니

우리가 할 일은 계속 공부하고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를 돌보는 것밖에 없음을

드라마 전체는 따뜻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에피소드는 마지막 에피소드이다.

학교 부적응과 청소년 자해로 입원한 

파일럿을 꿈꾸는 병희의 이야기에

'청소년 자해'라는, 청소년 상담 현장에서는

너무나 빈번하게 만나는 소재가 등장했을 때도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경계선 지능'과 풀다니.



실제로 청소년 상담 슈퍼비전을 할 때 확인하는 게

내담자의 전반적인 인지 기능 수준이다.

호소문제는 정서 문제인 경우에도, 많은 경우

실제적인 인지 수준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는 IQ에 민감해서,

이런 것들을 묻거나 조사하는 것을 

마냥 실례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IQ는 내가 멍청한지 똑똑한지

나아가 이과 갈지 문과 갈지 결정하는 데 사용되는

그런 검사가 아니라,

나의 전반적인 심리 사회적 발달 수준까지 가늠하는

정말 중요한 '심리'검사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수준별 교육이 어렵고

특히 경계선 지능 학생들은 사각지대에 있다.

그래서 특수교육도, 일반교육도 어디에도

그들의 자리가 없을 때 생기는 심리적 어려움

정말 잘 표현되었다. 

이런 소재가 등장한 한국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아서

제작진의 섬세한 사전조사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인간의 기본적 감정 중 하나인 '불안'은

몰라서 생기는 감정이다.

두려움도 사실 비슷하다.


원시 시절부터 우리 인간은 

모르고 낯선 것에 경계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도 없던 원시 시절에

처음 보는 버섯 먹었다가 죽는 사람이 한 둘이었으랴.

익숙하지 않으면 경계하는 것은 보호본능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버섯 먹는 원시인이 아니기에

모르는 것도 적응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 옆에 늘 있지만 모르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정신질환일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이 공포가 되지 않으려면.

그것들에 대해서 사랑을 가지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전문가처럼 공부할 순 없으니

이런 소프트 매체를 통해 정확하고 쉽게

반복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다.



언제 내 사람들에게, 또 나에게 올지 모르는

그 모르는 것들을 사랑으로 안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침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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