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D.P. 시즌 1 그리고 2
얼마 전 시즌 2가 릴리즈 된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남들 다 볼 때 안 보고 나중에 몰아보는 오묘한 취미를 가진 나는 일주일 만에 시즌 1을 몰아본 후 역시 시즌 1을 몰아보았다.
이것도 직업병인지, 항상 영화든 드라마든 보면 대체 그 가족은 제대로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 하고 있는지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시즌 1과 2를 몰아보고 나서 내게 선명하게 떠오른 건 이 드라마의 부제로 '안준호 일병의 잃어버린 부성을 찾아서'가 적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 드라마를 잘 살펴보면 제대로 된 아빠가 등장하지 않는다.
당장 주인공 준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가정폭력범. 시즌 1의 1화에서 등장하는 준호의 꿈에선 엄마를 폭행하는 아빠가 등장한다. 시즌 2에서도 준호의 아빠는 준호를 걱정하기보단 돈으로 회유하려는 간부의 장단을 맞춘다.
호열의 부모님은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고 계속 텅 빈 집의 가족사진으로만 등장한다. 호열의 외제차나 넓은 집 등을 고려할 때 아마 돈은 잘 벌지만 정서적으로는 완전히 부재한 아버지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에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탈영병들의 어머니(혹은 누나)는 등장하지만,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군대가 철저히 아버지의 세계인 것을 생각할 때 이렇게도 철저히 아버지가 배제된 것은 감독의 의도인지 무의식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부성을 상실한 개인들의 조직에서 '아들'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뜻밖에도 호열의 입이다. 호열은 자신의 후임인 준호를 '내 아들'이라고 한다. 준호를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에도 '그럼요, 누구 아들인데요'라고 한다. 보좌관은 '아들'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지만 그들을 '내 새끼, 내 자식'으로 인식하는 듯한 뉘앙스를 여러 군데서 풍긴다. 개인적으로는 호열과 준호를 'DP야'라고 부를 때 아주 정확하게 내 새끼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들렸다. 꼭 내 자식을 부르는 애칭 같은 것 말이다. 시즌 2 마지막에서 보좌관이 준호가저지른 어마어마한 일을 스스로 지고 잡혀갈 때, 자신이 저지른 일의 크기가 비로소 현실로 느껴져 무너지듯 우는 준호를 다독일 때, 그의 모습은 상관이라기보다 아버지에 가까웠다.
부와 모는 모두 중요하다. 각각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 부는 왜 중요할까. 부의 세계는 규칙과 한계를 가르친다. 어디까지 나아가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 명확한 한계를 배워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한계는 사실 안전을 제공하고 우리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만 나를 시험할 수 있다.
시즌 1에 나온 군에 오기 전 준호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알지도 못한다. 복싱도 꽤나 수준급인데, (정확히 나와있진 않지만 아마도) 그조차도 아버지에게 맞지 않기 위한, 그러니까 '안전을 보장하고 싶은 두려움'에 의한 자기 방어적인 성격의 재능 개발이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명확한 한계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면서 자신이 진짜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아가게 된다.
눈썰미가 좋은 나.
격투를 잘하는 나.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나.
원칙을 잘 준수하는 나.
이 모든 나, 가 자신을 '아들'이라 불러주는 안전한 부성의 세계를 만났을 때 비로소 꽃을 피운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았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최악의 일은 심리적 부모의 상실이다. 한계를 지어주고 그래서 뛰어넘게 해주는 건강한 스파링 상대로서의 부모가 없다는 것은, 평생을 두려움 속에 자신을 가둬놓아야 함을 뜻하니까.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