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
화제의 드라마!라고 말하기에도 너무 오래전인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내가 말하는 흥미로운 드라마란, 100명의 사람이 보면 100개의 각기 다른 울림과 파동을 만들어내는 드라마다. 4D 뺨치게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예측할 수 없는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이 드라마의 텐션을 끝까지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이 드라마는 나오는 캐릭터별로 리뷰를 하나씩 쓸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드라마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내게 가장 강하게 남은 질문은 이거였다.
왜 여다경은 이태오를 만났을까?
극 중 여다경은 지역 유지의 외동딸로 남부러울 것 없는 캐릭터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재력 넘치는 아빠와 어떤 영역에서는 충분히 자원이 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물려주고 가꿔준 엄마 밑에서 여다경은 하고 싶은 게 없는 어른이 되었다.
자신이 뭘 잘하고 못 하는지,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자각 또한 없다.
경계와 결핍이 없이 자란 이들은 결국 자신을 잃은 채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필요는 결핍에서 나온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은 부족함 없이 해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함 없이 해주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역량 이상을 쥐어짜고 또 긁어모아 아이에게 준다. 아이가 받아낼 수 있는 그릇의 크기라든가 소화의 속도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 그저 생기는 대로 마구마구 부어준다.
결과는 대부분 안 좋게 끝난다. 안 좋은 결과에 부모들은 절망한다. 사랑은 부족함 없이 해주는 게 아니라 적절한 결핍을 주어 그 안에서 자신의 경계와 한계를 찾아가게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필요는 결핍에서 나온다. 결핍이 있을 때 움직이고 부딪히며 내가 어디까지 뛸 수 있는지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 무엇까지 부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이게 바로 자존감이고 자신감이다.
자신의 한계와 경계를 모르고 자란
공허한 self를 가진 어른들은
자신의 한계와 경계를 위험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와 사람을 찾아 헤맨다.
아마 여다경에게는 이태오가 그랬을 것이다. 연상의 이태오가 주는 노련함이나 다정함 등도 분명히 매력적이지만 이건 그저 예선 통과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가 유부남이고 아이가 있다는 게 여다경에게는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라면 그런 역경을 다 이겨낼 수 있어. 극 후반부에 여다경이 억지로 준영이를 데려와서키우려 한 것도 이런 것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은 남편 아이 데리고 키우는 것 힘들다지만 나는 달라.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자란 어른들은
이상한 데다 힘을 쏟으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 한다.
내가 여다경이라면 아빠 돈 가지고 진즉 뭐라도 했을 거라는 댓글들이 당시 줄줄이 달렸지만 여다경이 그럴리가 없다. 밀린 자기 증명을 해내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는 그런 평범하고 지루한 발달과정을 밟을 틈이 없다. 어서 나의 나 됨을, 나의 힘을 증명해야 돼!
그들의 선택은 대부분 남이 하지 않는 희한한 것들인데. 삶에서 남들이 안 할 땐 대부분 이유가 있다... 여다경은 그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비웃는다. 그래서 유부남을 선택하고, 임신을 하고, 그 애를 낳고, 결혼하고,전처가 있는 지역에 돌아오고,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온다. 이길 수 없고 이길 필요도 없는 싸움판에 자꾸만 자신을 던지며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대부분 승자 없는 싸움터에 만신창이로 남게 된다. 한편으론 이토록 성장하지 못한 자신을 자꾸만 험지로 내모는 무의식적 자기 처벌이기도 하다.
다행히 다경은 자신의 이런 패턴에서 빠져나온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원래 나쁜 상황에서 나올 땐 단번에 끊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다경의 단호함 뒤엔 다시 부모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부모. 무엇을 받을지, 어떻게 받을지를 결정할 힘만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부모.
마지막 화, 도서관에서 왠 멀끔한 남자에게 쪽지를 받은 다경이 책을 다 싸서 자리를 뜨는 장면이 나온다. 그냥 씹으면 되지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다경은 아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자극에 취약한 사람이고 그래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그 자리를 떠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자신의 한계를 안 사람이 갖게 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