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스 갬빗>은 체스 천재의 성장기, 라는 간단한 설명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특유의 정취와 섬세한 감정선으로 시리즈가 다 끝나고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 수작이다. 보면서 나에게 남은 것들이 많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오래 경쟁할 수 있는가, 이다.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버리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확인한 5살 하먼은 보육원에서 운명처럼 체스를 만나게 된다. 어린 하먼의 천부적인 재능을 우연히 알게 된 관리인 샤이빌은 하먼에게 체스의 기본을 가르친 뒤, '기권하는 법'에 대해 가르친다.
"You resign now."
"No."
"Yes, you have resigned the game."
"You didn't tell me that in the rules."
"It's not a rule, sportsmanship."
<퀸스 갬빗> ep. 1
무서운 기세로 체스를 두는 하먼에게, 샤이빌은 '기권하는 법'을 가르친다. 더 하면 이길 수도 있는데 기권해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하먼은 그건 'rule'이 아니라 하지만, 샤이빌은 rule이 아닌 sportsmanship이라고 한다.
사실 하먼이 체스에 매료된 것은, 체스판 위는 완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 자신을 버거워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의 마지막 선택 등은 분명 트라우마였고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흑과 백, 승과 패가 명료한 체스의 세계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하먼에게 스포츠맨십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고, 뉘앙스와 판세를 읽어야 하는 더 어려운 장르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샤이빌은 하먼에게 먼저 기권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을까.
나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 체스를 그저 상대를 이기는 데만 의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의 스포츠를, 아니 경쟁을 그렇게 생각해온 것 같다. 경쟁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나쁘고, 사실은 두려운 그런 일이라 생각했다.
퀸스 갬빗에는 수많은 체스 경기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몰두하고 상대를 압박하며 경쟁에 최선을 다해 임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수가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 기권을 인정한다. 그럼 그제야 심판이 와서 판정을 외친다.
그들의 기권에는,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 대한 존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내 한계에 대한 인정, 상대의 훌륭함에 대한 존경, 체스라는 작은 세계에서 맺어진 이 관계에 대한 깔끔한 마무리가 담겨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서로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경쟁자이지만 '적'이 되지 않는다.
깨끗한 기권을 통해서 적을 적으로 두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만 그들은 경쟁을 계속해나갈 수 있게 된다. 나를 이긴 상대를 '적'으로 두는 순간 그들로부터 배울 수 없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써 성장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결국 경쟁은 내 성장점과 한계점을 두루 확인하기 위한 나를 위한 자리인데, '적'에 대한 적개심과 질투는 나를 명료하게 확인하는 것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경쟁은 상대를 거울삼아 나를 더욱 명료화하는 자리이고, 좋은 경쟁자일수록 찌를 듯이 깨끗한 거울 역할을 해준다.
하먼의 시작은 불안했고 온전히 자기편이 없었다. 그런 하먼의 천재성이 꽃을 피우고 전미 챔피언을 넘어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는 마치 바통을 넘겨주듯 중요한 대상들이 그의 옆에 있었다.
그 대상들은 어딘가 결핍이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먼에게 해주었고 하먼은 그 결핍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성장해갔다. 결코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아마 샤이빌씨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먼의 천재성이 현실에서 꽃 피우기 위해선 적이 아닌 좋은 경쟁자와 조력자가 필요하고, 그렇기 위해선 하먼은 기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너는 혼자가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