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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방 Mar 13. 2023

성장. 가능한 꿈을 꾸고 가능한 실패를 하는 것.

[드라마] 안나


상담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장'일 것이다. 나이 먹으면 누구나 하는 게 성장이 아닐까, 싶지만 진짜 성장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생물학적 나이만큼의 성장과 성숙을 기대하지만, 우리의 마음의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는 종종 맞지 않다. 특히 그 둘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날 때 우리는 큰 곤란을 겪게 된다.


쿠팡 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는 바로 성장과 성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의 글에는 드라마에 대한 일부 스포가 있습니다)


배우 수지가 연기하는 유미는 몸은 컸지만 그 안에 어린아이가 사는 인물이다. 아마 유미의 시간은 어릴 적 만난 (아마도 나르시시스트인듯한) 외국인 여성과 피아노와 포커로 함께 놀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타고나기를 호기심이 많고 성공에 대한 야망도 높았을 어린 유미에게 따뜻하고 수용적인, 하지만 그에 맞는 한계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부모는 아쉽게도 좋은 울타리가 아니었다.


타고나기를 흥미도 야망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는 단단한 울타리가 필요하다.

날카로운 검일수록 칼집이 튼튼하지 않으면 자신도 타인도 다치기 쉽기 때문이다.


어린 유미의 호기심과 에너지, 영리함을 채워준, 그래서 유미가 처음으로 어른으로 인식한 외국인 여성은, 그러나 아쉽게도 유미에게 건강한 한계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드라마의 시작마다 나오는 유미의 대사, "난 맘먹은 건 다해요."는 사실 그때 그 외국인 여성이 유미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준 메시지이기도 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네가 아닌 네가 되어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그래야 너를 아무도 무시하지 않아.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람들이 이런 한국 시골에 있는 자신을 무시할 거라며 자신이 영국의 귀족이라고 속이는 그 여성은 자신의 열등감과 수치심을 어린 유미에게 그대로 투영한다. 똑똑하고, 무엇이든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미는 그러한 그녀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후 유미의 삶은 진짜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내가 아닌 나를 쫓는 삶이 된다. 안 되면 거짓 눈물을 동원해서라도 발레 콩쿨에 기어이 나가고야 마는 것, 그림 실력이 훌륭하지 않지만 미대 실기를 고집하는 것, 고등학교 선생님과 사귀며 아이들 사이에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그 후 유미가 아닌 안나의 삶, 그러니까 신분도용이라는 범죄자의 삶을 살면서도 그 화려함의 옷을 놓치지 못한다.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욕망이 누구를 어떻게 해치는지,

심지어 그 욕망이 나를 해치고 있지는 않을지는

유미에게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선망의 대상이 될 수만 있다면 유미는 그 무엇이라도 희생하려고 한다. 이러한 유미의 태도를 기민하게 관찰하고 적절한 개입을 해주는 어른이 필요했지만 부모도 학교도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어쩌면, 유미의 부모는 자신들이 제대로 뒷바라지하지 못해도 모든 사람에게 그럴듯한 딸이 되어주는 똑똑한 유미가 내심 좋았을지도 모른다. 유미가 어떤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는지, 그에 비해 얼마나 허술한 칼집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부모 밑에서 유미는 첫 번째로 큰 상처를 입고 서울로 쫓기듯 떠난다.


사실 그렇게 서울로 갔을 때 유미에게는 괜찮아,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의 상황이 온전히 너의 잘못은 아니고, 특히 어른으로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음악교사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너도 이 일에서 네가 한 몫에 대해 분명히, 뼈저리게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대가는 내가 함께 져줄게. 그때 유미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없었던 것은 그 후 나비효과처럼, 너무나 커다란 파장을 만든다.






어쩌다 보니 그랬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라며

위기의 순간 유미가 맥없이 내뱉는 말들은

진짜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던

유치원생 유미의 목소리이다.


머리도, 몸도 커서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의 범위는

너무나도 커졌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성장과 성숙은 이루어지지 않은

어린 유미의 마음과 어른 유미의 몸이 빚은,

말도 안 되는 콜라보인 셈이다.




유미의 두 번째 이름인 안나는 어쩌면 "(내가) 아닌 나"의 준말인지도 모른다. 유미도, 그리고 진짜 안나도

모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이유는 딱 하나. 성숙과 성장을 해내지 못한 어른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배경에는 그들에게 현실의 한계를 가르치지 못한,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은 없다고 가르친 어른들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네가 못 할 일은 없어'라고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그래서 그 아이의 실망한 마음을 보며 견디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어 진짜 성취감을 갖도록 돕는 것,

그 성취감이 다음 성취의 발판이 되도록 하는 것.

이 모든 게 진짜 어른이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배우며 자란 아이는 풍선처럼 부풀려진 전능감만 가진 빈 껍데기의 어른이 될 뿐이다. 빈 껍데기에게는 결코 성장도 성숙도 없다. 그렇게 자란 빈 껍데기의 어른은 공허함을 갖추기 위해 더욱 화려해질 뿐, 진짜 내 것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드라마의 마지막. 주목받기 좋아하는 안나가,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바꾼 채 살아있지만 죽은 듯이 살아가야 하는 '리'가 된다. 유미로도 안나로도 살지 못한 채 그저 '성'만 남은 공허한 껍데기가 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꽁꽁 싸맨 얼굴을 조금 내린 유미의 눈빛은 어쩌면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원하던 나도, 진짜의 나도 아니지만 적어도 나를 해치지는 않을 그 삶에서 유미는 조금은 편안해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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