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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방 Sep 26. 2023

#12. 쿨함. 그저 순적하게 흘러가도록.

<상담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중 <남남>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인 동명의 웹툰이 다음에서 연재하는 동안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기에 드라마화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웹툰의 설정이나 줄거리를 최대한 따라가려는 노력 덕분인지 웹툰 팬의 마음이 섭섭하지 않은 드라마였습니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호연도 좋았구요. 저만 재미있게 본 게 아니었던지 평도 꽤나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웹툰에서는 은미와 진희, 두 모녀가 관계 안에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는 모습에 집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친부인 진홍의 역할은 부각되지 않는 편입니다. 드라마로 극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달라지는 점은 은미와 진희의 세계에 진홍이 어떻게 안착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드라마에서 ‘친부의 등장’은 일종의 클리셰입니다. 씩씩하게 자랐지만 어딘가 한 편 결핍을 가지고 있는 자녀가 친부가 등장함으로써 그 결핍을 채우고 오랜 부재의 시간도 ‘핏줄과 DNA 공유‘라는 사실로 순식간에 초월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이 드라마의 미덕이자 가장 큰 매력은 은미와 진희가 함부로 진홍이라는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미와 진희의 삶에서 어딘가 모르는 좌충우돌과 결핍이 있지만 그것이 진홍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것을 아님을 은미와 진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한편의 꾸깃한 부분이라는 거죠. 더 인상적인 것은 진홍 또한 그들의 관계에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좋은 점도 부족한 점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뿐 그것을 자신의 존재 혹은 부재와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은미는 진홍에게 자신의 애인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뿐 진희의 아버지 노릇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진희 또한 마찬가지이구요. 진홍 또한 클리세처럼 등장하는 무례한 간섭들로부터 이들을 보호니다. 그렇게 셋은 순리대로, 순적하게 각자의 길을 갑니다. 그 길에 그들은 만났다가 떨어졌다 또 만났다를 반복하며 함께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는 쿨하다, 일 것입니다. 쿨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상담에서 내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도 바로 ‘제발 제가 쿨했으면 좋겠어요!’입니다. 특히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들에게 쿨함은 거의 마법의 단어입니다. 어쩐지 이미 기울어져 버린 것 같은 관계의 지형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을 때 우린 그 관계의 시소에서 내려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곧 알게 됩니다.


상대에게 잔뜩 기울어진 관계의 추를 바라보며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어떻게 했다면 우리가 좀 더 비슷한 시소를 탈 수 있을까. 내가 무언가 놓친 게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애초에 시작부터 내가 무언가 잘 못한 게 아닐까. 이미 흐르고 있는 거대한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든 돌려보려 애씁니다. 나를 자학적으로 들여다보는 밤이 길어지고 나만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그 흔적을 찾아 무수히 많은 새벽 상대의 SNS를 뒤적이기도 합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일까 믿을만한 여러 사람에게 이 관계를 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윽고 알게 됩니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요.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이 들어갑니다. 긴장되고 경직된 우리의 마음이 놓치는 것은 바로 ‘순리’입니다. 특히 관계는 우리가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는 지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만나고 어디서 갈라졌다가 다시 어디쯤 합류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강이 원래 그랬듯이 각자의 모습대로 흘러가 바다라는 더 큰 곳에서 만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게 그렇게 쉬운 가요!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저라고 빠져나갈 것을 알면서 붙잡고 싶었던 관계가 없었을까요. 하지만 관계란 많은 경우 결국은 자신이 갈 곳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 자리를 돌아보면 남은 것은 그때의 나뿐이더라고요. 들뜬 마음으로 애쓰던 나나, 나와 같지 않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면서도 미루고 싶은 마음에 긴장과 어색함이 연체료가 되어 붙어도 모른 척하던 나는 그나마 귀여운 축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순리를 어떻게든 거스르고 싶어 나를 아프게 했던 나입니다. 그때의 나를 보면, 100도 넘게 돌려보아 결말과 대사를 모두 아는, 하지만 볼 때마다 울게 되는 그런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 마음은 이미 떠났어.

저 눈빛을 봐. 저 반응을 봐. 저게 바로 복선이라고!

지금이야! 지금 너도 일어나야 돼!

지금 일어나는 게 가장 덜 다칠 수 있는 마지노 선이야!


땅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진 내 마음을 나 조차도 괜스레 발로 툭툭 차는 걸 보는 것만큼 마음 아픈 일이 있을까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의 나에게 뛰어들어가 꼭 안아주고 싶어 집니다.


괜찮아. 이 관계는 이렇게 되었어. 이게 바로 순리야.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놓친 것도 아니야.

그냥 이건, 이렇게 될 일이었어. 너 자신을 미워하지마.

너 자신을 그만 아프게 해도 돼.




쿨하지 못한 우리의 뒤에는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게 흘러가길 바라는 욕심과 불안이 있습니다. 내가 잘한다면 내가 예상한 결과가 나오리라는 기대 또한 성실이 아닌 무지이니까요. 우리의 성장과 치유는 그래서, 내가 어떤 순리에 몸을 맡겨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질 때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일이었다는 것. 그리고 먼 훗날 돌아보면 그게 내게 최선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의 1순위는 나를 다치지 않게 하는 거라는 것, 그 어떠한 붙잡고 싶은 관계도 나와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 모든 것이 오고, 또 가지만, 나만은 여기에 항상 있다는 것. 주문처럼 늘 나를 위해 되뇌어야 하는 말들 아닐까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 중 ‘순적하다’가 있습니다. 사물이 고르고 순조롭게 진행됨, 거스르지 않고 좇음, 이라는 뜻입니다. 제 마음속 사전의 쿨하다의 정의는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고르게, 내가 다치지 않고 그렇게 흘러감. 우리, 그렇게 한 번 흘러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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