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 끝에는 '진로(進路)'를 찾게 된다. 상담신청 동기였던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좀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떠오르게 된다. 일 년간 상담을 해오던 분과의 일이다. 그분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면서 자연스럽게 상담을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분은 이전과 같은 문제가 반복할까 봐 여전히 두렵다고도 했다.
우리는 과거의 그 문제를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았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감정이 동요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분명히 알 것 같다고 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나'가 더욱 성장했음을 알아챘다. 그분께서 걱정하는 그 일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문제를 만나더라도 이전과는 다르게 만나게 될 것이란 것을 안다.
삶에서 반복되는 일들이 있다. 우리가 문제라고 부르는 일들은 반복되면서 단단히 고착된 것들이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이에 대해 '반복 강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반복되는 문제와 고통은 단순한 불운이나 운명이 아니라는 자기 스스로 그 문제의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이고 충동적인 심리 기제라는 뜻이다. 반복강박은 비록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익숙한 것을 택하려는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단순히 익숙해서 선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반복되는 그 문제는 미해결 된 문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자아는 문제의 해결을 원하기에 미해결 된 문제가 다시 자신을 찾아온다. 이는 다시 보면,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해결할 기회가 반복되는 뜻이기도 하다.
포티아 넬슨의 시 <다섯 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은 인생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잘 보여준다.
다섯 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
- 포티아 넬슨 -
1장.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그곳에 빠졌다...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데 영원 같은 시간이 걸렸다.
2장.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여전히 그걸 못 보았다. 다시...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3장.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미리 알아차렸지만 그래도 빠졌다...이제 습관이 되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즉시 빠져나왔다.
4장.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구덩이를 돌아 걸었다.
5장.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이 시를 읽은 소감은 제각각이다. 아직 문제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는 막막함을, 반복되는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회한을, 그 문제에서 빠져 나오게 된 사람에게는 비애에 찬 환희를 느끼게 한다.
1장은 처음 문제를 자각했을 때의 반응이다. 이때는 왜 내가 이런 불운한 일을 겪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의 탓인 것만 같아서 억울한 마음이 든다.
2장에서는 문제가 다시 반복되었을 때의 반응이다. 불운이 반복되면서 이것은 나의 비극적 운명은 아닐까 하는 자칫 운명론에 빠지게 된다. 불행의 수레바퀴에 빠져 있지만 어떻게 헤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3장에서는 다시 문제가 반복되지만 그 문제의 원인 중 일부가 자신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의 원인 중 하나만 바뀌어도 결과는 달라진다. 구덩이가 없어지거나 내가 그 길로 걸어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같은 결과를 반복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오랜 반복 끝에 그는 성찰에 이른다.
4장에서는 그는 문제를 직시하였고 이제는 다르게 행동한다. 환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반응을 알아챔으로 이제는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결국 문제를 피해 5장에서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1장에서 5장까지의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흔히 1-2장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쳇바퀴처럼 고통을 반복한다. 나에게도 반복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시에서 처럼 내가 그 문제의 원인 중 하나였음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문제를 만든 원인 중 하나였기에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다르게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비록 작은 크기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실수가 반복되더라도 무기력에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5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새로운 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4장을 훌쩍 넘어간 어느 지점에서야 5장의 새로운 길에 들어서 있음을 알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하지만 인생의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린 언제나 다른 길에 서도 웅덩이를 만날 수도 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고 해서 오만해지지 말자.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말자. 내가 변화하며 살아왔음을. 새로운 길을 늘 찾아갔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