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주 Aug 03. 2023

'치료'는 하지 말라는 부탁

'문제'가 아닌 '사람'을 봐주세요.

미술치료에 대한 오해를 여러 번 경험했다. 한 번은 미술치료를 받고 싶다면서 학부모 한분이 찾아오셨다. 는 그분께 미술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도움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보통은 '아이의 어려움이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혹은 '양육코칭을 받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의외였다.


우리 아이에게 '치료'는 하지 말아 주세요.


미술치료를 신청했지만 '치료'는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이가 어릴 적 한 기관에서 그림심리평가를 받은 후 마음의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그림에 oo가 없어서 자존감이 부족해 보여요. 그림에 oo가 있어서 불안이 심한 것 같아요."등등의 말을 들으며 위축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수년간 미술학원이나 미술치료센터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미술학원에 가면 정해진 주제를 그려야 하고, 미술치료를 받으러 가면 진단하고 평가하려고 해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치료는 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심리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는 평가법이라서 매우 신중하게 실시해야 한다. 그림의 형태도 보아야 하지만 그림을 그린 의도와 내용 그리고 그리는 과정에서 보이는 반응 등 다방면의 정보를 관찰하고 질문하며 살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그림을 통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리검사를 받고자 하는 이유는 문제를 개선하고 싶은 것이지 문제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가 내게 한 주문은 심리평가유무에 한정된 것 아니었다. 내 아이를 병리적 관점으로 대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의 문제만 보지 말고, 그저 만들기를 좋아하는 순수한 개구쟁이로, 한 명의 사람으로, 잠재성을 가진 존재로 봐달라는 의미였다.




심리검사를 받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평가를 해야 문제를 알고 문제를 알아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치료에 대해 흔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원인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심리치료를 받고자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질문을 다르게 해 보면 어떨까? "문제가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질문해 보는 것이다. 문제에 달라붙은 시선을 '원하는 것'으로 이동시켜 보는 것이다.


나는 '치료'를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아이와 첫 만남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종이 한가득 그리고 썼다. 게임과 장난감 일색이었지만 괜찮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가치평가는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에서 일단 출발한다. 지금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다음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다음, 그다음을 계속 찾아가다 보면 미술을 통해 많은 세상과 만나게 된다. 내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미술이 가진 힘이다. 미술치료는 '미술의 치유적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치료'는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