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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Jul 25. 2023

진정성, 오직 행동으로 드러난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없다. 진정성 있는 행동이 있을 뿐

발달장애아동과 짝수업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짝수업은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인 짝과 함께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때 짝은 연령, 기질, 기능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구성된다. 하지만 짝수업 파트너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짝수업은 갈등해결 방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상호작용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통분모가 많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 유리하다.


한 쌍의 짝을 만나게 되었다. 이중 한 명은 이제 막 상호작용의 욕구가 일어나기 시작한 상태였지만, 다른 한 명은 자기만의 세계에 깊게 들어가곤 했다. 한 명은 서브를 넣지만 한 명은 받지 않는 식이였다. 자기 공하고만 놀기 바빴다.


난 이 둘의 수업을 끌어 나가기 위해 프로그램 계획을 열심히 짰다. 논문도 보고 자료집도 보면서 연구했다. 호기심을 유발해서 자발성을 끌어내야 했고, 상호작용 욕구가 일어나도록 흥미로워야 했다.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반제품으로 제작해서 성취감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이 수업이 있는 날 저녁에 되면 목과 허리가 뻐근히 아파왔다. 생각했던 목표에 늘 도달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 '진성성'은 내가 만나는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 성실하게 공부하게 했고,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도록 했다. 그리고 미술치료사 동료들과 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내 마음이 그 아이들에게 가닿지 못했던 것일까? 왜 원하는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과 함께 자격지심에 휩싸였다. 


2021 로즈와일리 전시회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내게 '진정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성은 거짓이 없고 참되다는 의미이다. 내가 거짓 없이 참되게 행동하고 싶었던 것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내 실력만큼 쓰는 것이다. 내가 실력이 안되면 그 실력을 채워서 만드는 것이다. 배우고 연습하고 고민하면서 실력을 쌓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만큼을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쓰는 것이다. 나는 쓰는 것에 실패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넘치게 쓰고 싶었다. 실제 필요한 것보다 넘치게 준비하고 과하게 에너지를 썼고, 과잉된 에너지는 상대에게 가닿지 못한 채 나를 소진시켰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효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내가 만들어 논 치료 세션에서 아이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제보다는 오늘 더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결국 이런 조급함이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이다. 내가 추구했던 진정성 있는 행동이 결과로써 확인되기를 바랐다. 내가 진정성 있는 사람임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성취와 인정을 위해 진정성을 도구로 사용해버리고 말았다. 


내 세션을 좀 더 관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짝수업 멤버의 성향과 미술에 대한 반응에 대해 복기해 보면서 이들의 짝수업을 종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좀 더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날 수도 있는데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는 더 적합한 활동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내가 미술치료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역할 중 하나는 내 능력의 크기를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었다. 생각이 정리된 후 아동들의 부모에게 수업 피드백을 주었다.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권해주었다. 내가 아는 만큼, 느낀 만큼을 소화시킬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해 드리며 내 책임을 했다. 


후일에 이 중 한 명과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함께하는 아이보다 앞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직 그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세계에서 좋은 것이 그의 세계에서 꼭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그의 세계에 방문자가 되었다. 우린 꽤 괜찮은 호스트와 방문자가 되어 만났고 그는 내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미술이 어떻게 치료가 되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함께해서 더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즐거움은 최고의 치료제이니 말이다.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진실로 참된 행동'은 있어도 '진실로 참된 사람'은 없다. 진정성은 존재가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착하게 사는 사람은 착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진정성 있게 사는 사람은 진성성 있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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