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고 난 후였을까. 시커먼 구름 사이로 밝은 해가 비치었다. 하늘이 시커멓게 먹구름으로 차 있을 때는 구름 저 너머에 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하늘은 그저 어둠인 것처럼 느껴진다. 해가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살짝 비치는 찰나. 해는 언제가 그 자리에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도 이럴 때가 있다. 먹구름이 잔뜩 끼고 하늘이 내 가슴까지 두텁게 내려온 날에는 해가 사라진 것 같다. 아니 해가 존재했다는 생각은 아예 떠올리지도 못한 채 오직 먹구름만 보고 있다. 징글맞게 싫고, 도망하치고 싶은 얄미운 먹구름만 보인다. 해가 있었던 정상의 세상이 끝나고 불운의 어둠 속에 갇힌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구름이지만, 구름 뒤에는 해가 있다. 언제나 해가 있다.
어둠에 갇혀 있을 때 조급해 말자. 가만히 어둠 속에 머물다 보면 순간 어둠에 익숙해진다. 어둠과 좀 더 친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은 때가 되어 사라진다. 먹구름이 가시면서 해가 드러난다. 언제나 구름 뒤에 있었던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는 어둠 그 자체가 아니다. 어둠을 견딜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해가 있음을 믿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인생은 끝도 없는 터널 속 같다고 말했던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이 그림을 본다면 무어라 말하셨을까? 또다시 태풍이 올 거 아니냐며 낙담하셨을까? 다시 엄마를 만난다면 이제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또다시 태풍이 불어오더라도 지금 만난 해가 그저 반가워. 그 해를 볼 수 있어서 기뻐. 엄마와 내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