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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Oct 10. 2023

마크 로스코(4) 느낌적인 느낌으로 보기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살아왔던 존의 방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고 이름표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저것은 하늘이야. 저것은 바다야. 저것 나무야 하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것을 지각하고 어떠한 대상인지 인식합니다. 그러나 로스코의 작품은 모호한 빛이며 희뿌연 안개 같으며 깊은 바다의 심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정확하게 지각할 수도 명료하게 인식하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느껴질 뿐입니다.


로스코의 작품이 대상을 재현하지 않은 추상이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면 저는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추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대상을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자각이 인식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숨은 그림을 찾으며 정답을 발견하려 하기에 로스코 작품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노을지는 하늘을 오랜시간 바라본 적이 있나요? 해가 지는 하늘은 아름답습니다. 예쁜 아름다움이 아닌 슬프고 황홀한 아름다움입니다. 낮의 뜨거운 태양과는 달리 지는 해는 자신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게 허락해 줍니다. 그 빛을 조금씩 삭이며 자신을 보여줍니다. 빛 속에는 낮에 보였던 밝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을의 붉은빛에 압도되기도 하고 빛이 사라지는 희미함에 다시 간절히 불러 세우고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 노을을 보며 저의 삶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생각합니다.     


바다를 가까이에서 바라본 적이 있나요? 저 멀리 수평선만 보이는 짙은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의 물결과 함께 출렁거립니다. 밀려오는 파도에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지던 그 순간을 생각합니다. 쓸려가는 파도에 붙잡을 수 없는 상실을 느낍니다. 거칠고 깊게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에는 압도되기도 하고 저 멀리 쓸려 나가는 파도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합니다. 파도의 밀물과 썰물을 보며 내 마음에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것들, 내 마음의 덮치고는 빠져나간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로스코의 작품을 만난다는 건 자연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를 집어삼킬 듯이 두렵게도 하지만 나를 안아주는 자연말이죠. 이러한 자연 속을 거니는 마음, 이러한 자연 속에 머무는 마음이 로스코의 추상을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할 것입니다.


<Orange and Yellow>, 1956, 오일에 캔버스, 231 x 180.3 cm, 뉴욕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추상과 감정이입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는 <추상과 감정이입>에서 "미학적 즐거움을 향유한다는 것은 대상화된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자신을 감정이입하여 자기 자신을 평소와 다른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할 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그림에 반영하여 자신의 내면을 다른 감각으로 즐기게 되는 것이지요. 미술작품에 감정을 이입하여 미학적으로 즐길 때 자신을 감각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미술작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미술감상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기제인 '투사'를 사용하게 됩니다. '투사'란 심리학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투사'는 말 그대로 던진다는 것입니다. 프로젝터 영사기가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영상 데이터는 별도의 저장장치에 들어 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스크린에 '투사'하여 보여집니다. 영화는 영사기 안에 가지고 있지만 마치 스크린이 영화를 가지도 있는것처럼 보여집니다.  이처럼 우리 내부(영사기)에 있는 생각, 감정, 성격 등을 외부 대상(스크린)에게 던지는 것이 투사입니다. 투사는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 투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욕구나 감정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자 융은 마음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투사가 될 수 있는 보편적 심리현상으로 보았습니다. 분석 심리학에서는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을 외부에 떠넘기고 난 후 그것이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이때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미해결 된 감정의 응어리가 의식화된다고 했습니다. 감정의 응어리가 의식화될 때 감정의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투사의 방법을 사용하여 미술치료에서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기도 하고, 예술가가 그린 미술작품을 감상하여자신의 감정을 살펴볼 수 도 있습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기에 매우 좋은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은 안정적이고 평온하기보다는 모호하고 불안합니다. 그의 작품은 특히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때론 불안에 휩 쓸리고 때로는 격정이 휘몰아치기도 합니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기표현을 열망을 지닌 유기체'라고 불렀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그 순간 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태들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로스코가 작품을 끝낸 것은 작가로서 작업의 완성이지 그림의 완성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림은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또 다른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그림은 유기체가 되어 살아납니다. 그림은 자신을 알아본 그 사람에게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일깨워주며 무엇보다도 잘 알아채 주게 됩니다.


상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마세요. 그저 머물어 보세요. 그렇게 자신의 섬세한 영혼과 만나보세요. 하늘과 함께 바다와 함께 그리고 로스코와 함께.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대중에게 설명해 주는 것은 친절하고 유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고와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예술가를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인가를 꼭 믿어야 한다면 나는 자유로운 감상자의 섬세한 영혼을 믿는다.
- 마크 로스코-        
휴스턴 로스코 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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