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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Oct 23. 2023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천경우 <쉼 쉬는 마당>

천경우, <숨 쉬는 마당> 2023, 퍼포먼스와 설치


천경우 작가의 <숨 쉬는 마당>은 테이블 위에 커다란 흙 마당이 펼쳐져 있다. 마당은 집 안의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외부로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다. 내밀하지만 드러나는 공간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천경우 작가는 테이블 위를 흙으로 덮어 마당을 만들었다. 흙마당 위에는 두 개의 전구가 마주 보며 불빛을 깜박이고 있다. 전구 하나는 전시에 참여를 희망한 시민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한 것이며, 다른 전구 하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은 사람의 답신을 녹음한 것이다. 이 둘의 언어가 빛으로 변환되어 어두운 마당을 밝히고 있다. 말의 세기, 빠르기, 높낮이에 따라 불빛은 더 밝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하며 잦은 깜박임을 만들기도 하고 한동안 암전이 되기도 한다.      


언어적 소통이 단절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 오해가 쌓인 친구,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는 서로 어떻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과연 빛으로 서로를 알아챌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언어 규칙을 가진 우리가 마음을 알아볼 수 있을까? 홀로 있는 순간에도 너와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숨 쉬는 마당>에 참여한 114개의 사연이 담긴 흙



<숨 쉬는 마당>에 프로젝트에 참가한 시민들의 빛을 받은 토양은 벽에 걸린 자루에 담긴 후 전시가 끝나고 나면 찬가자 전원에게 발송되게 된다. 이 흙을  화분에 심거나 아니면 집 밖 어딘가에 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흙은 식물이 자라날 수 있게도 할 것이며 작은 생물들이 기거하는 서식처가 될 것이다. 너와 내가 나눈 대화의 빛을 흡수한 흙은 여기저기 삶의 도처에 뿌려져 삶을 계속 생성시켜 나갈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가 빛을 내며 반짝이는 것을 볼 때, 그 빛을 받은 흙이 하나로 뒤섞이는 것을 볼 때, 그 흙이 새로운 환경 속에 일부로 흡수되는 것을 볼 때, 그 환경 속에서 다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볼 때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 내가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지 않을까? 예술은 인간의 지각을 조금 더 넓게 확장시켜 준다. 삶의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준다.


함께 빛으로 반짝이고 싶은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의 깜박임을 네가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빛이 될 때까지, 흙이 될 때까지, 생명이 될 때까지.






Exhibition Details

2023 동시대미술 특별전 <마당: 마중합니다 당신을>

2023. 09. 19 - 2024. 01. 28

수원시립미술관

suma.suw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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