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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r 02. 2024

두려움과 충동

대립에서 오는 긴장감을 견디기

"충동의 위험과 두려움은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을 알려주는 삶의 시그널이다. 동시에 그것은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 <피해의식> 황진규



나의 피해의식(기를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마음)은 주로 그 '두려움'을 통해 드러난다. '두려움'은 극복하거나 피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해석되어야 하는 감정일 수 있다. '충동'에서 비롯된 '두려움'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충동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에너지다. 두려움은 멈추거나 밀어 내려하고 충동은  나가려 한다. 두려움에 휩쓸린다면 삶은 정체되고 무기력해지며, 충동에 휩쓸린다면 삶은 혼란스러워진다.  두 개의 에너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때 삶에는 강한 활력이 생긴다.  내 안에 있는 충동적 에너지와 그를 저지하려는 두려움에 대해 탐색해 보기로 했다.




충동과 두려움 탐색 작업 (2024-02-18)


두려움은 삶에 유용했다. 문제를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하여 실패할 확률을 줄였다. 보다 좋은 것, 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게 했다. 반대로 두려움이 없다면 위험에 빠질 것이고 잦은 실수로 비난을 받거나 곤경에 빠지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두려움'을 많이 느꼈던 이유는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타인으로부터의 비난과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이유였다.


두려움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기도 했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두려움이 느껴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는 등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런 긴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사전에 지나치게 준비를 한다던지 혹은 시도 자체를 하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시도를 하지 않으니 무력감을 드는 날도 있었고 자기 비하에 휩싸이기도 했다.


만일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어떨까?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하고 성장하고 삶이 확장될 것 같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는 살아있는 상태, 생명력을 느끼는 상태, 내가 크게 부풀어지는 것 같은 상태가 떠오른다.


충동도 비슷한 방식으로 탐색했다. 흔히 '충동'적이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혼란스럽고 유아적이라는 편견이 든다. 하지만 충동이 있어 좋은 점은 자유로움, 즐거움, 기쁨, 유쾌함, 가벼움이라는 긍정적 정서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와도 유사하다. 반대로 충동이 없다면 생명력이  상태가 된다. 삶이 지루하고 권태롭고 답답하고 지어 누군가를 탓하게 도 있다.


내가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고 충동을 경계하는 것은 부모의 가르침의 영향이었다. "매사 조심하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거라" 이런 말들은 부모로부터도 들어왔고 지금 나도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말들이다. 우리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해 왔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 '충분히'라는 정도의 차이를 모른 채 사용해 왔다. 그러니 과도히 조심하고 과도히 스스로를 호하고, 과도 각자의 마음을 단속하면서 살아왔다. 적당한 두려움은 스스로를 보호해 주지만 과도한 망적 두려움은 삶을 회피하게 만든다.


이렇게 두려움과 충동을 색하고 나니 두려움과 충동의 양 극단 중 어디에 서고 싶은지가 좀 더 선명해졌다. 나는 고지식한 안전함 보다는 불안하더라도 가볍고 유쾌한 방향에 서고 싶다. 실제적 위험에서 두려움을 감지하되 지나친 망상에 쪼그라들고 싶지 않다. 두려움과 충동으로 인한 내면의 갈등을 견뎌내고 새로운 길을 내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훈육된 내면의 질서가 아직도 내게 세상을 경계하라 말하고 있지만, 한 편의 다른 목소리가 세상을 사랑하라 가르치고 있다. 나는 내 안의 대립되는 두 개의 목소리가 주는 부딪침을 견뎌낼 것이다. 유쾌하고 자유로운 삶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다. 그 사이에 새로운 길을 내는 기쁨, 열정,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고 한편으로 찾아오는 외로움, 고독감, 분열 또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대립으로 인한 갈등을 버티고 견디며 나아갈 것이다. 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때까지 혼란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려 한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생명의 속성이라는 것을 조금 더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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