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를 할 때 다양한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 초반에 만나는 어려움은 '방어'이다. 내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마음이 다칠 일도, 다친 마음이 곪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쉽게 속마음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상처 받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나눈 기억보다 그렇지 못했던 기억이 크다면 방어하고자 하는 마음은 더욱 커진다.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강한 벽을 세우게 된다.
나는 상담과정에서 자연물을 자주 이용한다. 푸른 이파리나 때론 단풍 든 낙엽, 마른 나뭇가지, 부서진 돌 같은 것들이 책상 위에 올려둔다. 이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다. 아이들은 자연물을 자르고 찢으며 바로 놀이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의아해한다. 어른들은 진지하게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의의함과 난처함으로 가득한 얼굴앞에서 "요즘 이파리가 참 예뻐요. 자연 좋아하세요?"라고 말문을 연다. 누구나 자연을 좋아한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연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어리둥절해하며 동그랗게 뜬 눈 속에는 순간적으로 추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익숙한 자연물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대고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고, 자신이 아는 풀이라며 말문을 연다.
색지를 고른 후 그 안을 자연물로 꾸민다. 고르는 색도 배치하는 모양도 사람마다 가지가지다. 작업을 하며 조금씩 말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고 아무런 말이 없기도 하다. 작업이 끝난 후 작업 중에 들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시작할 때 당황하거나 낯설지 않았는지, 그리고 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를 떠올려 본다.
대수롭지 않게 작업한 모양 속에는 자신의 마음이 들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의 마음이 처한 상황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관찰하게 되고, 마음이란것이 관찰 가능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좀 더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깊은 성찰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미술 작업은 그 자체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문제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더 집중하게 된다. 풀의 모양, 꽃의 생김새, 그리고 꽃이 어디에 많이 피었는지를 본다. 길가에 한두 개 핀 꽃은 차마 가져갈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아지풀, 갈대도 눈여겨보고 길가에 돌멩이도 유심히 살핀다. 돌멩이의 모양도 참 가지가지다. 예쁘고 맨질맨질한 것, 거칠고 오둘도둘한것 가끔씩 유리와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들도 섞여 있다. 그중 쓸만한 돌과 예쁜 자연물을 골라 담는다. 이것을 보고 반가워할 혹은 갸우뚱 할 얼굴을 떠올리면 즐겁다. 작은 풀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자연을 매개로 우리는 연결된다. 자연은 우리의 마음을 녹인다. 딱딱한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리게 한다.
미술치료에서 작품을 보며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이라고 배웠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을 만지고 냄새 맡고 눈에 담는 것이다. 한 사람과 만나고 눈빛을 교환하고 마음을 나누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내 안의 문제에서 빠져나와 잠시라도 세상 속에서 호흡해 보는 것이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것은 사소하지 않다. 작은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틈을 통해 생명의 가능성이 싹트는 것을 본다. 삶에서 배우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