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3-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실험을 한 후 이들의 삶을 30년간 추적 조사했다. 이 실험에서는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한 개가 있는 접시와 두 개가 있는 접시를 보여준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한 개를 바로 먹어도 되지만 선생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두 개를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먹거나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참는 선택을 한다.
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추적한 결과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았던 아이들은 대인관계, 학업 수준도 좋았으나 바로 먹어 버린 아이들은 약물 중독, 사회 부적응의 문제를 보였다. 이에 이 연구자는 어린 시절의 인내심이 클수록 어른이 된 후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한동안 많은 자기 개발서에 사례로 인용되면서 자기 조절과 절제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실험의 참여자 수가 100명이 채 되지 않았으며 연구에 참여한 아동이 스탠퍼드 대학 구성원의 자녀라는 점 때문에 실험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참여자의 수가 적고 그리고 고소득과 고학력인 부모를 둔 가정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이었다.
2018년 후속연구에서는 좀 더 다양한 가정환경을 고려하여 1000명에 가까운 모집단을 구성하여 실험한 결과 인내력과 학업성적, 대인 관계와는 상관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마시멜로를 한 개 먼저 먹어 치우는 것은 인내심(인성)의 문제이기보다는 가정환경이나 사회 경제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다.
만일 마시멜로를 지금 당장 먹지 않더라도 다음에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약간의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약속을 지켰거나 혹은 마시멜로쯤은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경제적 능력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을 먹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 경험을 했거나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당장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을 취하고 만족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부모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거나, 혹은 마시멜로를 경제적 혹은 건강 등의 이유로 사 먹지 못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자기 조절 능력은 중요하지만 이 능력의 형성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 문화적 환경, 가정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인내심이나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우기 위해 개인과 환경은 어떻게 상호작용 해야 할까?
인내는 쓴맛일까?
어린 어린아이가 상담실에 찾아왔다. 또래 아이보다 키가 작고 마른 체격이었다. 미술가운을 입히며 눈 맞춤을 시도했다. 아이의 눈은 방구석구석을 따라 빠르게 굴러갔다. 마치 숲 속에 숨어 있는 짐승을 찾는 사냥꾼의 눈매처럼 방구석구석을 빠르고 치밀하게 탐색했다. 아마도 아이는 호기심이 매우 많고 궁금한 것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풀숲을, 아니 재료장을 뒤적거릴 수 도 있음을 눈치챘다. (훗, 나도 너 못지않은 사냥꾼 기질이 있으므로)
아이와는 그리기, 점토, 물감, 가루 등 단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유동성 있는 매체까지 탐색에 들어갔다. 초반 몇 주는 아이가 구조화된 환경에 맞추어 따라왔다. 주어진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고 새로운 재료를 찾아서 써보기도 했다. 불안과 강박적 행동이 주호소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잘 적응을 했다.
그러다가 언제인가부터 모래를 던지고, 벽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저지할 새도 없이 빨랐다. 미리 주의를 주고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듯이, 나를 약 올리는 듯이, 마치 도발하는 듯이 시도했다. 재미있다고 까르르 웃으면서. (하... 올 것이 왔다.)
문제 행동이 치료실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심리치료가 시작된다. 밖과 같은 문제행동을 하더라도 치료실의 환경, 즉 치료실이라는 공간, 놀잇감, 미술도구, 그리고 나(선생님)이라는 배치가 아이의 행동을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가 가진 힘, 때로는 분노의 에너지를 활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아이에게 경계를 세워주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이에게 벽에 그리면 안 된다. 도화지에 그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소용했었다. 아이의 몸은 자신의 의지보다도 빨리 움직였다. 나에게는 산만해 보였지만 아이에게는 지루함 일수도 있다. 아이가 여러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책상을 두 개 놓고 움직이면서 작업을 했다. 녀석은 움직이는 와중에도 벽에 줄을 그으면서 다녔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가 벽에 낙서를 해도 되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낙서용 전지를 붙였다. 처음에는 전지 안에 신나게 그렸다. 이제 그만 두려나 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악. 크레파스는 끝내 전지 밖으로 밀려 나갔다. 아이와 나는 마치 쫒고 피하는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부산스러운 행동은 몰입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관심사, 아이의 홀딱 빠질만한 것, 아이가 던지거나 뿌리지 않고 손과 눈과 온 마음을 집중할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색칠하기부터 시작해서 선긋기,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 그리기, 자동차 핸들 조정하기, 세차장, 주유소 만들기 등 온갖 자동차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고 아이의 충동성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만족을 지연시키고 조절능력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하루짜리 작업이 아닌 며칠에 걸쳐서 작업할 수 있도록 거창한 계획을 가졌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한주 참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단순한 인내심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다음에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한계의 수용과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결과물을 통해 만족감을 경험하길 바랬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에게 오늘 작업은 이번 시간에 마칠 수 없다고 미리 예고해 주었다. 아이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끝날 시간이 되자 아이는 한 주를 더 기다릴 수 없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 종료를 단호하게 말했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고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바닥에 앉았다. 아이는 내 품속에서 그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친구들, 선생님들 때문에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두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았다고 말이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빠르고 인지능력이 상당히 좋았다.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반응에 거부감을 느꼈다. 또한 인지적 능력이 우수해서 정서적 능력(참고 인내하는)까지 과대 평가했던 어른들의 훈육으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그동안 우리가 서로 지켜 왔던 약속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우린 완벽하지 않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준비해 주었고, 재료가 부족하면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비슷한 것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도 주어진 지시에 따르려고 최대한 노력해 왔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왔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있었음을 돌아보았다. 아이의 성난 심장이 조금씩 온순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복사 코팅까지 약속 이행을 위한 신성한 의식을 치른 후 헤어졌다. 그 뒤로 아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기쁨을 경험해 나갔다. 그리고 자동차도 몇 대 더 만들었다.
인내의 참 맛을 느끼기 위해
인내심은 자발적인 것이다. 그 자발성은 관심과 욕구에서 나온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더 잘, 더 멋있게, 더 근사하게 만들기 위해 주어진 조건을 수용하고 인내해야 한다. 더 근사한 것이 내게 오리라는, 더 근사하게 만들 기회가 있으리라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인내할 수 있다. 인내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억압과는 다르다. 인내는 자기 조절이다. 나의 에너지를 쓸 때 쓰고 뺄 때 빼며 보다 근사한 것(미술작품 혹은 삶)을 창조해 가는 능력이다.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 믿음의 달콤함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믿음의 경험이 없는 어른들은 믿으라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다. 인내는 쓰고 결과는 달다는 상투적 표현을 반복할 것이다. 자기 조절과 만족지연을 해야 한다며 개인의 의지만을 강요할 것이다. 아직 열매의 단맛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단맛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영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마시멜로의 맛을 본 어른이라면 그 맛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맛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맛을 알려줄 수 있다. 그 과정을 겪었기에, 사랑하는 너를 위해, 너에게 맞는 방법을 궁리하며, 너에게 달콤함을 선물해 줄 수 있다. 행복한 어른이 행복한 아이를 기른다. 행복한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상투적 인내 말고 유쾌한 인내를 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