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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Jul 04. 2024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네게도 차마 못하는 말이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사시는 아버지는 나와 매일 통화를 나누었다. 통화 내용은 주로 불만과 걱정들이었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고민거리들이었다. 언제인가는 하도 친구와 가족들 흉을 보시기에 듣기가 좀 거북했다. 그래서 말하고 말았다. 불평 듣는 거 너무 힘들다고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억울함 반 슬픔 반을 채운 목소리로 네게도 못하는 말이 있다고 하셨다. 어리석었던 시절이라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불만의 일부만 양을 줄여서 말했다고만 생각했다.



"네가 힘들까 봐 말하지 못했어"


친구가 힘든 일을 힘겹게 혼자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왜 그 말을 이제야 했냐고,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냐고 안타까워하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네가 힘들까 봐 말하지 못했다고. 네가 마음이 상할까 봐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 친구가  내 맘속에 들어 있는 고약한 것들에 대해 궁금해했다.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내 마음에 들어오려는 것이 고맙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 자리에 들어와 나를 보드랍게 위로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 자리에 들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의 짐을 너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몫까지 네게 안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넌 괜찮다고 웃을 테지만, 그래서 난 또 마음이 편해지겠지만, 네가 마음이 상한 게 싫었다. 너가 아프면 내가 아플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아버지의 슬픈 목소리가 다시 생각이 난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 알 것 같다. 아버지는 고통을 내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혼자 삼키신것이다. 몫의 고통까지 혼자 감당하셨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많았다. 왜 내게 기대지 못했을까? 왜 내게 마음 편히 말하지 못했을까? 왜 내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알았던 라면, 눈치챘더라면 내가 아버지를 더 이해했을 텐데, 위로해 주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작은 사랑은 더 큰 사랑을 보지 못한다. 아버지는 나를 더 크게 아끼고 사랑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보고 싶고 필요하기도 하셨겠지만, 그보다 내가 다칠까, 혹시 상할까 노심초사하며 날 살피신 것이다. 그래서 차마 이 말만은 딸에게 하지 말자. 이 고통만은 너에게 넘기지 말자하며 입술을 깨무셨을 것이다.


나는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내 사랑보다 그들의 사랑이 더 컸기에 작은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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