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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ug 31. 2024

덧없음에게 바치는 애틋한 찬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 (완벽한 연인)>


우리의 시간은 찰나에서 만난다. 운명처럼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완벽한 연인)>, 1991, 사진 출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재단


두 개의 시계가 있다. 이 시계에는 새 건전지를 끼워 놓았고 초침까지 같은 시간으로 맞추어 두었다. 시간은 같은 시간을 향해 착착착 흘러간다. 그러다가 조금씩 두 시계의 시간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건전지의 상태에 따라 혹은 기계의 상태에 따라 시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한쪽시계가 멎는다. 한쪽 시계가 멎었지만 다른 하나의 시계는 계속 흐른다. 조금씩 느리게 흘러가다 결국 남은 시계도 멎어 버리고 만다. 같은 시간을 향해가던 시계는 어긋나 버렸고 결국 다른 시간을 흐른다.


이 작품은 쿠파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개념미술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1957-1996)의 <무제 (완벽한 연인)>이라는 작품이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연인 로스가 투병 중에 이 작품을 제작(1987-1990)했다. 연인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감을 표현한 것이다. 시간의 덧없음과 삶의 유한함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각자에게 다른 순간, 다른 시차를 두고 찾아온다. 실제로 연인 로스는 1991년도에 에이즈로 사망했고, 곤잘레스 토레스는 5년 뒤에 사망했다.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어김없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완벽한 연인)> , 1987-1990, 사진 출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재단


시간의 어긋남은 생물학적 시간만이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시계를 가지고 살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과 시계를 쓰고 살더라도 항상 같은 시간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영광과 기쁨, 과거의 슬픔과 고통에 사는 경우가 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정신은 과거의 그림자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정신은 미래의 시간에 있다. 미래에는, 내년에는, 다음에는 이라고 말하면서 현재 원하는 것을 나중에 가능하리라 상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시계는 지금 여기가 아닌 오지 않는 미래의 환상 속을 흐르고 있다.


한 사람의 삶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이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한 사람은 현재를 걷고 있고 한 사람은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 있다면 이들은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시차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이들이 과연 만날 수는 있을까?



우리의 시간은 동기화된다. 사랑으로


시계를 두려워하지 마... 우리는 특정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에 만나 운명을 정복했어... 우리는 같은 시간에 맞춰졌어. 지금 그리고 영원히(곤잘레스-토레스가 로스에게 쓴 편지)


<무제(완벽한 연인)>은 물질의 한계 속에서 멈추고 소멸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계의 배터리를 갈아 끼움으로 해서 시간은 다시 맞추어지게 된다. 소멸의 상태에서 다시 생명의 에너지를 채우며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은 죽었지만 시계는 재생된다. 이렇게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재생된다.


유한한 사랑은 미술관에서 다른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무한히 재생된다. 사랑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어느 미술관에서건 시계 두 개만 있으, 그리고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 남겨진 설계도대로 설치된다면 이 시계는 같은 시간에서 만날 수 있다. 여러 개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나면 곤잘레스-토레스의 미술작품을 다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두 시간이 같이 흐르는 찰나를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이 시계는 결국 맞지 않으리라는 것을, 결국 엇갈리는 시간 속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같은 시간에 맞추어진 이 순간이 기적임을 알고 소중히 대해야 한다. 언젠가 어긋나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토레스는 연인에게 말한다. "시계를 두려워하지 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수학적인 시간 그 자체가 아니다. 같은 시간 속에 머물 수 있는가.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동기화될 수 있는가. 그것이 시간이라는 운명의 압박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맞춰졌어" 


어긋난 인연, 다른 시간을 걷고 있는 인연과 만나고 싶다면 서로의 시간을 동기화해야 한다. 나의 시간을 버리고 너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보는 세계를 과감히 거절하고 네가 보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찰나의 순간이나마 같은 시간 속에서 만날 수 있다.   


곤잘레스-토레스가 연인과 맞추어진 시간은 시계를 맞추듯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건전지를 교체하면 다시 재생되는 그런 일들이 아니다. 곤잘레스의 작품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가볍게 수리되는 공산품과는 다르다는 데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시계를 고치는 그런 일이 아니다. 너와 나의 시간을 동기화시키는 일이다. 어렵고 고단하고 위대한 일이다.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그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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