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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Jun 17. 2023

외로움과 고독함, 그 사이를 걸으며

에드워드 호퍼 전시 <길 위에서>


# "우리 모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에 관해 흔히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겪었던 경제적 성장으로 인한 삶의 만족감과 불안감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호퍼의 그림 속에는 미국의 주류 계층의 삶, 특히 백인 중산층의 삶의 모습과 함께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한 풍요로움과 안정은 적막과 고요로 둘러싸여 있어, 정작 작품에서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감정은 얼굴 표정으로 드러나있지 않으며, 여러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에서도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물들 간에 서로 대화를 나누지도, 심지어 시선을 교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물인 듯 대하고 있어 보인다. 그래서 호퍼의 그림에서는 인물들이 함께 있지만 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처럼 보이며, 그러한 그림을 보며 외로움, 고독감, 소외감이 등의 세상과 분절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외로움과 고독감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호퍼의 그림에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외로움을 그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호퍼의 그림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모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라 부르는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5-30년
(좌) <도시의 지붕들> 1922년 / (우)  <이층이 내리는 햇빛>, 1960년



# 그림에 투사되어 돌아오는 나의 그림자


   나는 한때 호퍼의 작품에서는 음소거가 된 것 같은 적막함,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는 건조함, 교류되지 않는 시선 속에서 쓸쓸함을 느꼈었다. 아마도 그의 작품에서 나의 삶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호퍼의 작품 속에는 자연스레 자신의 심리를 투사하게 된다. 


   심리검사 중에는 TAT(Thematic Apperception Test, 주제통각검사)라는 것이 있다. 제시된 이미지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피검자의 심리를 평가하는 검사 기법이다. 피검자는 제시되는 이미지를 통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필요한 욕구를 드러내게 된다. 제시된 이미지 카드를 보면서 어떤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느낌을 상상해 보고, 그 상황이 일어나게 된 전 후 맥락을 떠올리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일상의 삶의 모습을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카드 보면 내 마음의 어느 한 편이 깊게 투사되면서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그 그림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다. 그 거리감은 나와의 상황과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호퍼의 그림은 TAT 검사에서 사용되는 그림카드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내 감정의 상태를 투영해 보곤 했다. 


에드워드 호퍼 <아침 해>, 1952년


   이번 전시장을 찾기 전에는 호퍼의 작품 속에서 홀로 있는 쓸쓸한 정서인 외로움과 심지어는 소외감까지 느끼곤 했었다. 혼자 창을 바라보고 있는 <아침 해>의 저 여인을 보자.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그림이었다. 


<아침 해> 침대 위에 한 여자가 홀로 앉아 있다. 평일 아침 7시 정도 되어 보인다. 계절은 한 여름이라 아침부터 더운 공기가 후끈 들어오고, 햇살은 살을 태우듯 따갑다. 여자는 밤새 저 상태로 아침을 맞이한 것 같다. 침대 위에는 누운 흔적을 찾기 어렵고 이불마저 놓여있지 않다. 여자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긴 하루를 만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뿌옇고 안개 같은 하루를 맞이했다. 방안에 들어온 햇살도 갈 길을 뚜렷이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나의 심리적 상태였다. 나는 15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며 야심 차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따스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한주 한 주, 한 달 한 달 시간이 흘러갈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해 방황을 했고, 가까운 이들에게 화풀이하며 나의 불안을 떠안겨 주곤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깊은 모호함 속에 휩쓸린 기분이었다. 난 <아침 해> 속의 여인에게 나의 모습을 투사했다. 나라도 저 여인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었다. 이 그림을 보며 외로운 나를 불쌍히 여기며 깊은 자기 연민에 빠져있었다.



# 외로움과 고독감, 그 사이를 거닐며 알게 된 것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우리는 흔히 외로움과 고독함을 혼동하여 사용한다. 사전적으로 외로움이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며, ‘고독함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느낌’으로 정의한다. 국어사전에도 외로움과 고독함은 비슷한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 해리 스택 설리번은 외로움은 ‘인간관계로부터 고립된 부정적 혼자됨’이고, 고독은 ‘스스로 선택해 자신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으로 그 개념을 구분했다.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도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면 고독함은 스스로 힘으로 홀로 서 있을 때 느끼는 홀로 됨이라는 것이다. 외로움은 관계 지향의 욕구가 크지만 충족되지 못한 감정이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고독은 혼자됨을 능동적으로 선택한 상태에서 느끼기 때문에 외로움에서 승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다시 고요히 전시장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게도 지금의 내게는 외로움의 정서가 느껴지지 않는다. 위태롭고 가녀린 외로움 대신 단단한 고독이 느껴진다. 호퍼가 작품에 투영한 세계는 무엇이었을지를 생각하며 다시 그의 작품 속을 다시 거닐어 보았다. 


아내를 모델로 한 <햇빛 속의 여인>에서는 한 여자가 창을 바라보며 서 있다. 밝은 햇살을 보며 서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하루를 계획하고 있을까? 아니면 지난 시간을 후회하고 있을까? 정지된 이 장면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흘러간다. 옷을 입지 않은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회적 장치도 없으며, 어떠한 방어도 없다. 무언가 열심히 하려 하거나,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저 있다. 고요하게 정지된 상태로, 그저 머물러 있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음을 알고 있다. 내게도 외로움이 아닌 고독으로 서 있는 그녀가 보인다. 이제야 비로서 그녀의 고독이 보인다. 오늘에서야 비로서 그녀의 홀로있음이 긍정된다. 



# 침묵이 주는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 그리고 에너지


   호퍼는 자신의 그림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이 느껴진다는 평론가와 대중들을 향해 자신의 그림을 심리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다. 단지 보는 이들이 그렇게(외로움 등의 정서) 보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관람자가 미술작품을 볼 때 심리적 상태가 투사되어 그림을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도 그러한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퍼가 당부한것은 관람자가 작품에 자신의 심리를 투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작가의 심리적 상태를 해석하는 것,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호퍼는 무엇을 그린 것일까? 매우 내성적이었던 호퍼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은  한 인터뷰에서의 호퍼의 말이다. -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의 미술아카이브에 등재된 존 모스와의 대담(1959)중 일부


나는 자연에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려고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이 필요한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빈방의 빛>


   호퍼의 공간은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도 빛과 어둠이 들어있다.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은듯 보이나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상태, 무언가로 채워질 것만 같은 욕망이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빈방의 빛>(미전시 작품)을 보면 잠든 것 같은 고요함과 동시에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을 동시에 준다. 호퍼가 본 자연(스러움)의 상태는 이러한 순간이지 않을까? 나는 호퍼의 작품에서 고요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고요함이 만드는 에너지를 발견했다. 씨앗이 발화하기 직전의 상태,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기 이전의 상태, 알에서 새가 깨어 나오기 직전의 상태가 떠오른다. 내 눈에 지각되지는 않지만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가 상상된다.


비어있는 방 안에는 우리의 많은 감정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그 방에는 무엇이든, 어떤 기억이든 담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창조적인 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린 이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을 적막함이나 외로움, 심지어는 소외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빛이 공간에 스며들어 있음에도 나의 편견은 세상과의 단절이자 고립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던 것이다.


   호퍼는 삽화 작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면서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겠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해석이나 설명을 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회화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예술가였다. 조용하지만 묵묵히 자신을 드러냈던 그의 삶이 그림을 통해 무게감있게 전달된다. 그런 삶의 에너지는 격동적인 파동이 아니라, 뭉근히 조용히 몸에 파고든다. 호퍼의 그림 사이를 거닐며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고독감을 만났다. 삶을 창조하는고요한 파동이 내게도 흘러들어왔다.





Exhibition Details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2023. 04. 20 - 2023. 08. 20

서울시립미술관

sema.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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