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
엄마가 남기고 간 유산
엄마는 돌아가시기 몇 개월간 병원에 누워계셨다. 숟가락을 들고 손수 식사를 하기는 어려웠지만 몸을 반쯤 일으키는 정도는 가능했고, 발음이 뭉개지기는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엄마는 속내를 잘 비치지 않던 분이셨다. 엄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힘들게 입을 움직이며 말을 쏟아 내였다. "인생은 긴 터널이다. 긴 터널을 참고 견디면 결국 밖으로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긴 터널 속이었다." 엄마는 절망하셨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참고 견뎠는데 결국 병을 얻고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며 한탄하셨다. 나는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찾을 수 없었다. 힘든 엄마 앞에서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을 꼭 다물었다. 목구멍이 타는 고통이라도 참고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얼마 후 엄마는 회사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거셨다. 평소 같으면 딸이 회사에 있는 시간에는 전화를 걸지 않으셨기에 왱왱거리는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갑작스러운 전화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앞뒤 맥락도 없이 "잘살아야 한다"라고 했다. 몇 달 뒤 이 통화는 유언이 되었다.
엄마는 참 열심히 사셨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공부도 많이 가르쳐 주셨다. TV에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시고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도 만들어 주셨고 문화센터에서 하는 각종 수업을 듣기도 하셨다. 지역사회에서 하는 운동 대회에도 나가고 정당에 가입해 정치활동도 하셨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 갈 때쯤엔 엄마도 대학 진학을 꿈꾸며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니며 입시 준비를 하셨다. 우리 집 주방 싱크대 몇 칸은 엄마의 책이 가득 찼다. 엄마는 주방을 서재 삼아서 공부하셨다.
나는 엄마가 가진 배움의 열망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엄마의 삶은 내게 자랑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에 찾아와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연락을 했다. 친구들과 친척들에게는 전화를 했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이메일을 썼다. 메일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이 직장동료이거나 거래처 사람들이었다. 의례적인 방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조문을 온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내게 주어야 하고 때론 마음도 주어야 하는 고된 일이다. 고마운 이웃사촌들이었다. 감사인사와 함께 엄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엄마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열정적이었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내게 남긴 말은 너무나 비극적이었다. 그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목울대가 부풀었고 눈물로 시야를 뿌옇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끝도 없는 절망을 헤매다 결국 절망 속에서 사라져 갔다. 끝낼 수 없는 절망을 한탄하셨다. 엄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자신의 절망을 알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절망을 통해 내게 희망을 찾게 했다. 엄마가 보여주지도, 들려주지도 못한 '잘 사는 삶'에 대한 숙제가 내게 남겨졌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희망에서 절망으로
엄마처럼 끝내 고통을 말하며 떠난 화가가 있다. 바로 빈센트 반고흐(1853-1890)이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그가 죽기 전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에는 삶의 절망감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 밀밭 위에는 검푸른 먹구름이 뒤덮여 있어 햇살이 뚫고 나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저 멀리 구름 두 점만이 아직 먹구름이 내려오지 않았음을 보여주지만, 뚜렷한 형태가 없는 구름의 모양에는 힘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림 아래쪽을 보면 황금빛 밀밭은 세 가지 길로 갈라져 있다. 그 세 개의 길 중 어느 한 길을 뚜렷이 목표하지 못하고 있다. 가운데 길은 밀밭 사이로 사라져 가고 있으며 양쪽의 길은 불분명하게 그려졌다. 흔히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절망과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림에는 소실점이 분명치 않아 불안하며, 붓 터치가 매우 거칠고 무질서하며 신경질적 이기까지 하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릴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동생 테오의 생활비 지원으로 어렵게 그림을 그리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정신적 문제로 혼란스러워했으며 주변인들과 트러블과 멸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빈센트 반고흐는 어려운 상황 속에도 그림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좋아하던 성경과 책을 끊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취해 있었다. 고흐는 그림이 있기에 어려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고흐는 죽기 전 1년 가장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동시에 가장 활발하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 냈다.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그리고 그리고 그렸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37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슬픔은 영원할 것이다(La tristesse durera toujours.)"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희망을 찾던 그는 어찌해 다시 절망하고 만 것일까? 왜 절망에서 찾은 희망은 다시 절망으로 뒤바뀌고 마는가?
희망과 절망의 롤러코스터
희망은 '바라는' 상태이며 절망감은 '바라는'것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는 희망하며,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망한다. 모두 '바람'에서 빚어지는 감정이다. '바람'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 희망도 절망도 결국 관념 속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허망해진다. 기대에서 생겨난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깊은 절망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희망이라는 빛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빛을 찾아 몸을 움직이며 기대를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절망이 된다. 상상에서 일어난 것은 상상 속에서 쉽게 무너진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태어나고 절망은 희망 속에서 태어난다. 희망과 절망에서 기대하는 것은 불확실한 것이기에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갈 때 우리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만다.
희망하지 않는다면 절망할 것도 없다.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면 그것은 괴로움이 된다. 많은 것을 바랄수록, 빨리 바뀌기를 바랄수록 절망은 크다. 나는 '본래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을 희망했다. 학창 시절에는 '평범한 모범생'이었으며 직장생활을 할 때는 '우수한 모범사원'이었다. 결혼을 하고서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이자 '아내'였으며 부모님들께는 '착한 딸', '수더분한 며느리'였다. 친구들에게는 분위기 잘 맞추어주고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난 '모범'과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했다. 그건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일들을 찾아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려고 했다. 그러나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간다는 것은 지독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했다. 평범한, 모범적인, 착한, 수더분한 이라는 내게 덕지덕지 붙어 있던 수식어를 떼어 버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는 '이기적'이라거나 '유별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유언을 떠올렸다. 엄마의 '잘살아야 한다'는 말은 오기를 품을 만큼 힘이 있는 말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기쁘게 사는 삶 아니겠는가. 나는 엄마의 유언을 방패 삼아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유별나 보일지라도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기쁜 순간에 머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나는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오기를 품은 것이었기에 생각만큼 삶이 부드럽고 유려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많은 걸림돌이 보였고 기존의 습관들이 변화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유별난 것은 아닐까 하며 멈추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찰나였다. 솔직히 말하면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고 싶어진 것이다. 희망을 쫒는 일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며 노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망을 통해 무기력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 할 수 없는 일이야. 능력 밖의 것을 희망하고야 말았어'. 이렇게 지난 습관과 타협하고 싶은 생각이 무섭게 덮쳐오곤 한다.
다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바라보자. 하늘과 맞닿을 만큼 널은 황금의 밀밭이 펼쳐져 있다. 저 위에 하늘에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지만 그러나 까마귀는 하늘을 향해 가고 있다. 하늘의 길로 계속 날아가고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큰 세 개의 길이 눈앞에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그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는 아쉬움도 아니다. 그저 길 앞에 서 있을 뿐이다. 밀밭의 희망과 먹구름의 절망을 똑바로 바라본 채 길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닥쳐온 그 상황을 똑바로 응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고흐는 자신이 당면한 내면의 숙제를 바라보고 있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며 희망과 절망사이를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것이다. 삶의 슬픔과 외로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최전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사이에 진지함
고흐는 농부를 좋아했다. 농부의 내면을 느끼고 그리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하며, 농부의 진실하고 정직한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다. 농부는 땅을 일구며 몸으로 일하고 그 대가로 곡식을 얻는다. 농부는 노력한 것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성실하고 진지하다. 진지함은 엄숙함이나 심각함과는 다르다. 진지하다는 것은 마음과 몸이 한결같다는 말이다. '진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참되고 착실하다.'이다. 농부가 곡식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 광부가 석탄을 캐기 위해 괭이질을 하는 것, 구두를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하는 것,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질을 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멈추지 않는 것이 진지함이다.
농사에도 결실이 있고 인생에도 결실을 본다. 희망은 모두 있는 것이고 절망은 전부 없는 것이 아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눈금이 있다. 바라는 것이 생겨났다면 그때는 시작에 불과하다. 부지런히 일하고 노동하며 보낸 시간은 결실을 맺는다. 그 결실만큼 내 몫이 된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헛된 희망이 된다. 모든 것을 나 혼자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오기이자 오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는 내 몸이 미치는 선까지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변 상황에 맡겨진다. 농사에서도 농부의 땀이 중요하지만, 날씨와 토양이라는 조건이 영향을 받는다. 나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은 나태함이다. 한계 속에서 진지하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발걸음만큼이다.
엄마는 분명 열심히 사셨다. 희망하는 만큼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셨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자신이 어느 만큼을 원하고 어느 만큼을 해왔는지 가늠하지 못하셨다. 엄마는 지금 삶이 아닌 다른 어떤 새로운 삶을 꿈꾸셨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막연한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미처 깨닫기 전에 죽음이 덮쳐 왔다. 엄마는 자신의 한계를 모른다는 한계를 가지고 계셨다. 엄마는 그 한계에서 멈추었고 엄마의 유언으로 나는 다시 엄마의 한계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매 순간을 진지하게 몸을 쓰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내가 남기고 싶은 유산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은 어두운 밤길을 그린 것이다. 흔들거리는 색채들이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명의 기운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나무 중앙에 있는 사이플러스 나무는 두 그루가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엉켜 있고 그 끝은 하늘에 가닿을 것 같다. 길 위에는 함께 걷는 나그네와 마차의 모습도 보인다. 생생하지만 고요한 배경에 다양한 초록색 잎사귀와 색색의 노란색 갈대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부드럽게 바스락 거리는 소리 낼 것만 같다.
고흐는 이 시기 사이프러스 나무에 매혹되었다. 그가 죽던 해에는 지극한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희미한 별에 과장된 광채를 부여하며 희망을 찾으려고도 했고, 자연에 다양한 색을 부여하며 생명력을 표현하려고 했다. 고흐는 매 순간 격렬하고 고뇌했다. 그리고 그 고뇌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 과정에 어떻게 고통이 없을 수 있을까? 그 과정이 어찌 슬프지 않을까? 사랑하는 일과 함께 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을 감수하게 한다. 고통이 영원하다는 그이 마지막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통뿐 아니라 삶에는 무수히 많은 다양한 색채가 있다. 고흐는 자신이 자연에서 발견하고 삶에서 깨닫고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고민했던 생각을 동생 테오를 비롯하여 주변인들에게 편지로 알렸다. 그가 원했던 것은 고뇌 그 자체가 아니라 고뇌를 통해 찾고자 했던 삶의 기쁨이었다.
아이들은 가끔 죽음에 관 이야기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갑자기 꺼낸 말이다. "난 엄마가 죽어도 잘 살 것 같아. 엄마와 함께했던 좋은 기억이 많으니까." 부모는 자식에게 흔적을 남긴다. 사랑할수록 진한 흔적을 남긴다. 앞으로 아이와 갈등을 겪으며 아이가 그동안 가졌던 좋은 기억을 나쁜 기억으로 덮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진하게 남기게 될 것이다. 엄마가 남기고 간 절망은 내게 물음표가 되어 빛을 찾아 나가게 했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찾은 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절망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 말씀처럼 인생은 끝도 없는 터널 속일지도 모른다. 이 터널에서 춥고 외로웠고 불안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넘어지는 날도, 상처 입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걸었다. 그 터널에서 사랑하는 너를 만났고, 인생을 배웠다. 터널 속에는 삶이 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걷다가 길에서 쓰러지고 싶다. 길을 걷다 쓰러진 화가처럼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나의 한계 속에서 고뇌하며 그 속에서 다시 진지한 걸음을 내딛고 싶다. 아이는 이전의 나처럼 궁금해할 것이다. "엄마는 왜 그토록 걸으려 했을까?" 나는 아이에게 추억뿐 아니라 물음표를 남기고 싶다. 삶의 기쁨을 찾아갈 수 있는 물음표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