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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현실과 초현실 사이를 걷는 여정

르네 마그리트 <회귀>

by 정희주

상상할 자유


예술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위로와 깨닮음이다. 사랑, 희망, 성장,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그림을 보면 덩달아 따뜻한 마음이 전이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반면 어떤 그림은 모호하고 불편하고 때로는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며 생각을 확장시킨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그림은 맥락에 맞지 않는 대상들의 배치로 끊임없는 궁금증과 상상을 자극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주자이다. 초현실주의는 미술의 주제를 현실에서 보이는 대상에서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확장시켰다.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꿈이나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렸다면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데페이즈망'은 전치라는 뜻으로 위치를 바꾼다는 의미이다. 가 그린 일상의 사물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위치한다. 이질적인 맥락속에서 사물은 이전에 가지고 의미를 잃고 사물 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유도한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눈으로는 어떤 시물을 그렸는지 확인힐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때는 상상하게 된다. 그의 그림은 보는 그림이 아니다. 생각하고 상상할 자유를 준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르네 마그리트 <선택적 친화력>, 1933, 캔버스에 오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는 알과 새가 자주 등장한다. 알은 감추어진 것이며 새는 드러난 것이다. 새는 결과이며 알은 과정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하나의 장면에 현재의 알과 미래의 새와 같은 다양한 시제를 한 번에 담기도 하고 안과 밖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대상의 의미를 끊질기게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여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선택적 친화력>에는 알이 새장 안에 갇혀 있다. 알은 언제 깨어날까? 알이 깨어나게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알이 깨어나고 난 후 좁은 새장은 어떻게 될까? 날개가 부러질까? 아니면 새장이 부서질까? 그림을 보며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 보수적인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답답했다. 좁은 내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 방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미성년 신분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학교와 집 외에는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온통 금지된 것 투성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좀 더 나이를 먹고 나면 통제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했다. 지나친 통제는 나의 부자유함을 깨닫게 했다.


성인이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여전히 세상은 많은 금기가 있었지만 미성년시절보다는 훨씬 자유를 느꼈다. 졸업할 무렵 IMF 사태가 터지고 심각한 취업난이 찾아왔다. 친구들은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취업을 선택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성인이 되었고 대학졸업증도 있으니 이제 사회에 나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돈을 통해 더 많은 자유를 얻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면 더 자유로울 줄 알았다. 돈을 벌고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지만 돈을 쓸 시간의 자유가 줄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생각할 자유, 내 의견을 표현할 자유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점점 내 생각이 없어지고 조직의 부품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빛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갔다. 내 빛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유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벌고 소비를 한다고 해서 자유롭다는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소모되고 지쳐갔다. 나를 힘들지 않게 하는 완전한 내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통해 완벽한 가정을 선물 받고 싶었고 안정을 찾고 싶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상상만 해도 아름답고 근사한 것이었다. 20년 전 결혼식에서 선서했던 서약서에는 '순종'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듣기만 해도 답답해지는 이 단어가 당시에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마도 완전한 내 편과 함께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모두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환상으로부터의 자유


르네 마그리트 <회귀>, 1940, 캔버스에 오일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자유를 원하면서도 부자유의 세계를 살고 있을까? 내가 벗어나고 싶은 현실은 무엇일까? 이 또한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또 다른 환상이지 않을까?


<회귀> 에는 짙은 어둠이 깔린 시간에 발코니에 빛이 들어오고 알 세 개에 빛을 비추고 있다. 창문너머 펼쳐진 하늘에는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새가 날고 있는 시간은 밤이지만 새는 낮의 하늘을 품고 있다. 어미새가 알을 낳고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알을 품기 위해 돌아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새는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는 이미 하늘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는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물리적 구속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찾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를 둘러싼 환경의 힘이 너무나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환경의 문제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다. 혼자서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발에 족쇠가 채워져 있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나를 억압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만든 감옥에 나를 가둔 것이다.



사랑을 향할 자유


르네 마그리트 <봄>, 캔버스에 오일, 1965


감옥에 갇힌 것 같은 환상을 느낄 때는 소망이 생겼을 때다. 사랑과 같은 큰 기쁨을 주는 소망이 있을 때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이 생긴다. 친구가 나를 차로 나를 바래다주다가 접촉사고가 난 일이 있었다. 상대 차에 과실이었지만 친구는 너무 당황하고 불안해했다. 나는 가족들이 집으로 귀가할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친구는 괜찮다며 나를 서둘러 보내려고 했다. 너무 마음이 쓰여 예상보다 늦게 출발하기는 했지만 사고 수습과정을 모두 지켜봐 주지 못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명료하게 판단하지 못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너무나 당황하고 괴로웠을 친구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랑하는 친구를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부자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현실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나를 보며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새 아버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있었다. 그날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아버지댁으로 가고 싶었지만 옆에 누워있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나갈 수가 없었다. 사정을 호소하고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솔직히는 아이들보다 부모를 더 생각한다는 비난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았다. 밤새 애타는 마음을 누르고 부지런히 아버지 집에 갔지만 예상대로 아버지 건강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다. 그때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깨달았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나의 자유를 가로막았을까? 나를 구속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랑을 위해 행동했을 때 받게 될 비난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했던 것이다. 특정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비난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친구에 대한 사랑보다,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통해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사랑이 부자유를 깨닫게 한다면, 반대로 사랑할수록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모든 비난을 물리치고, 두려움 없이 사랑을 선택한 기억을 찾아보자. 사랑하는 남자와 크게 싸운 날, 그날 화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한걸음을 다가서고 싶었다. 후회의 감정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몰래 한밤중에 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고 인천에서 서울 끝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나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부모의 뜻을 어겼다는 비난보다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울 때도 그랬다. 임신 7개월 차에 출근길에 양수가 터졌다. 출산휴가를 쓰기까지 1달여간 시간이 남은 상태였기에 업무인계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당장 끝내야 하는 기획서가 남은 상황이었다. 나는 회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병원으로 돌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다. 입원 후 한 달 동안 아이를 좀 더 키운 후에 8개월 만에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이른둥이였지만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다. 예상대로 회사에서는 나를 비난했고 무책임하다는 말이 나돌았다.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귀했을 때 인사상의 불이익이 있었다. 상관없었다. 회사에서는 비록 나쁜 년이 되었지만 덕분에 아이를 살렸다.


그토록 부르짖던 "자유롭고 싶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이었다. "자유롭고 싶다"가 아닌 "사랑하고 싶다"라고 말해야 한다. 사랑은 자유를 향한 발걸음에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사랑을 향한 자유는 고통마저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할 일을 하는 자유


르네 마그리트 <통찰력>, 1936, 캔버스에 오일, 개인소장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은 '알'속에 응축된 채로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내 안에 모두 들어 있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능력도, 하늘을 품을 수 있는 마음도 모두 자기 안에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알을 깨고 나오느냐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통찰력>에서는 화가가 알을 보며 알속에서 앞으로 태어날 새를 상상하고 있다. 작품의 원제를 직역하면 투시(Clairvoyance)이기도 하며 '자화상(Self Portrait)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마그리트 회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시각화했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에게도 알 속에서 태어난 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마그리트는 알을 보고 상상한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그림을 그린다. 알의 밖을 보며 속을 상상하고, 상상한 것을 그리면서 몸으로 실천한다. 그 과정에서 알속에 감춰진 응축된 영혼은 자유로이 깨어난다.


살아왔던 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의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해 본다. 다시 상상한 미래를 현재의 몸을 통해 만들어 간다. 자유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자유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그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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