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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인>

by 정희주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어디에서나 이질감을 느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나는 남들과는 출신배경이 다른 비주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곳에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웹디자이너로 취직을 했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는 미대출신이 아닌 것이 콤플렉스였다. 내 디자인이 후지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모르는 것은 묻고 찾고 배웠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디자인을 그만두고 기획자로 재취업을 했다. 제안서를 한 번도 써보지 못했지만 참고자료를 찾아 형식을 갖춘 기획서를 만들어 냈다. 회사에서는 일을 시키면 자기 몫 이상을 한다며 좋아했다.


열심히 일했고 일한 만큼 인정받았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나면 힘이 생겼다. 인정을 받고 나면 회사에서는 나에게 일을 믿고 맡겼고 간섭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에도 귀 기울여 주었다. 나를 주장할 권리가 생겼다. 새로운 프로젝트 할 때면, 새로운 관리자를 만날 때면, 새로운 상황이 만날 때면 나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때마다 기대에 부응하며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곳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확인받았다. 이 과정에서 실력이 쌓여 간다고 느꼈지만 반면 피폐해졌다. 결핍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이런 불편함은 내게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기도 하지만 불만족은 불안을 만들어 냈다. 내 인생이 가짜인 것만 같았다.


증명하며 사는 삶은 회사를 그만두고도 끝나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도슨트를 할 때도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나는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삶에서 그랬듯이 어쩌다가 운이 좋게 도슨트가 된 것뿐이었다. 미술관의 자료가 너무 어려웠다. 미술관에 붙은 전시 해설이 너무나 난해했다. 왜 이렇게 어렵게 표현했을까? 나는 여기 적혀 있는 것을 그대로 느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에서 활동하면서 미술관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자유로운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야말로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보며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는 비전공자인데 나의 생각을 말해도 될까? 교수나 비평가도 아닌데 나의 감상을 대중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모든 자격지심이 학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공자라면, 내가 좋은 학교 출신이라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말에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에서 결핍감에 시달린 것도, 내가 비주류인 것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를 쓰며 노력하다가 소진된 것도 모두 학벌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이참에 좋은 간판으로 최종학력을 바꿔달고 싶었다. 내가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둔 것은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마음뿐 아니었다. 더 좋은 스펙을 가지고 싶었다. 내 목소리를 낼 자격, 더 자유로울 자격을 취득하고 싶었다.


몇 군데의 대학원에 지원했다. 미술치료학에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M대, 학교 이름이 그럴듯한 서울의 H대, 그리고 어디선가 커리큘럼이 괜찮다고 입소문이 난 수도권의 G대에 지원을 했고 모두 합격을 했다. 오랜 한을 풀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당연히 간판을 쫓아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끝내 G대를 선택했다. 지방대 콤플렉스를 벗고 싶었으나 결국 또다시 지방대를 선택했다. 간판보다는 현실적 이득을 택하고 싶었다. 출신 학교가 주는 포장지보다는 알맹이를 알차게 채우고 싶었다. 그것이 현실적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토록 고통받은 학력에 대한 결핍을 끝내 끊어내는 길이라 생각했다.


위선이었다. 비주류 콤플렉스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미술치료'는 상담분야의 비주류이다. 미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동미술'같아 시시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담하는 사람들에게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는다. 어떤 사람들은 혈액형 심리학과 같은 유사과학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점쟁이나 사기꾼 같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나란 사람은 이 일을 할 자격을 가지고 있나? 나 역시 미술전공자도 아니고 상담이나 교육을 오랜 시간 해왔던 사람도 아니다. 그야말로 이방인인 내가 학계에서도 비주류인 이 분야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비주류 콤플렉스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비주류는 어떻게 인정받는가?


스크린샷 2025-06-06 084535.png <세관>, 1890년, 캔버스에 오일, 37.5x32.5cm, 코톨드 인스티튜드, 런던


예술가들의 세계에서도 비주류들이 있다.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도 많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미술가가 된 경우가 있다. 앙리 루소(1844-1910)가 대표적이다. 루소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세관원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루소는 지루한 세관원의 일상을 극복하기 위해 일요일이면 그림을 그렸다.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려서 '일요일의 화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루소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다. 주중에는 세관원으로 살고 일요일에는 화가가 되었다. 40세가 넘어 세관원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된다.


<세관>은 루소가 일하고 있는 세관 검문소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파리는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출입을 위해서는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루소는 술과 와인의 유통을 검사하고 감독하는 관리인이었다. 벽을 중심으로 두 명의 세관원이 서있다. 마치 목각 인형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명은 국경선 안쪽을, 한 명을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 속에서 초록은 짙고 옅은 농담의 변화를 나타내며 다채롭지만 지루하고 권태로운 느낌이 든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지독한 권태가 감돈다. 루소는 공무원과 화가라는 경계에 있었다. 익숙한 안쪽의 세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사이의 경계에서 심리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스크린샷 2025-06-05 195131.png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1905년, 캔버스에 오일, 201.5x301.5cm, 바이엘러 재단, 스위스 바젤


루소는 자신의 작품을 당대 최고의 전시회였던 살롱전에 출품하지 못했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방법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을 너무 못 그린다면서 사람들의 혹평을 받고 심지어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는 살롱전 대신 어떠한 자격이나 심사기준도 없는 앙데팡당전에 그림을 꾸준히 선보였다. 루소의 작품은 밀림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린 이후 호평을 듣기 시작한다.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속에는 정글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자가 영양을 잡아 뜯고 있고 숲 속에서는 다른 동물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어 있다. 이 그림은 밀림 속이 한순간을 포착한 것 같지만 당시 파리 도시인의 삶에 대한 모습이기도 하다. 도시의 삶도 거대한 정글이고 그곳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영양의 신세가 될 수도 숲 속에 숨어있는 신세가 될 수도 때론 사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불안감에 몸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영양처럼 잘못 걸리면 사자에 잡아 먹히고 만다. 루소의 내면도 이렇게 갈등하는 정글과도 같지 않았을까.



주어진 조건 속에서 한걸음


스크린샷 2025-06-05 195739.png <잠자는 집시 여인>, 1897, 캔버스에 오일, 129.5cm X 200.7cm, 뉴욕현대미술관


<잠자는 집시 여인>에는 보름달이 비치는 사막 한가운데 집시여인이 잠들고 있다. 여인의 옆에는 만돌린과 물병이 놓여 있다. 손에는 지팡이를 꼭 쥐고 있다. 어쩌면 전재산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깊게 잠들어 있다. 사자의 인기척도 느끼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마 먼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허기지고 외롭고 몹시 지쳐있을 것이다. 그녀는 소박한 물건들을 옆에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다른 밀림 그림에서 공격적이었던 사자는 온순하고 심지어 다정하다. 만일 이 사막에 사자가 없었다면 집시 여인은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사자의 존재가 여인을 사막에서 고립시키지 않는다. 사자는 위로와 동시에 긴장감을 준다.


루소의 작품 스타일은 독특하다. 그림 공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원근법도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했다는 비평을 들어왔다. 하지만 루소의 그림이 보여주는 평면성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루소의 그림은 대상들 간의 거리감이 없고 평면처럼 느껴지고 마치 종이를 찢어 붙인 콜라주를 보는 것처럼 다채롭다. 마치 꿈의 한 장면처럼 환상처럼 느껴지면서도 긴장감은 생생하다. 너무 가짜 같은데 진짜의 감정이 일어난다. 꿈같으면서도 실제 같은 것이 루소 그림의 특징이다. 루소가 평생을 안고 지냈던 열등감은 그만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원근법을 배우지 못했고 완벽히 구사하지 못해서 실제를 재현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루소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릴 때 각장 행복하다고 말해왔다. 태양 아래서 초목과 꽃피는 것을 볼 때마다 "저 모든 것이 내 거야"라고 혼잣말을 하며 자연을 자신의 것을 만들어 왔다. 그런 그가 파리 박람회에서 아프카의 정글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루소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단 한 번도 파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전시장의 사진과 물건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동경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루소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 정글의 원시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고 꿈을 꾸었다. 그렇게 그의 꿈은 환상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내었다.


루소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을 늘 안고 살았다. 하지만 미술 학교에서 그림을 배우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루소는 자신이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 극복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신 그는 끊임없이 상상상하고 그렸다. 루소는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그리기와 사랑하는 자연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신 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권위에 눈치 보지 않는, 관습에 길들여지지 않는 자기 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루소는 오직 그림과 자연에 헌신하는 화가였다.



삶으로 인정받고 싶다.


스크린샷 2025-06-05 195238.png <뱀을 부리는 사람> 1907년, 캔버스에 오일, 169 x 189.3 cm, 오르셰 미술관, 파


<뱀을 부리는 사람>에서 한 사람이 피리를 불고 있다. 그림 속 정글은 더 이상 약육강식의 투쟁의 장소가 아니다. 피리 소리를 듣고 나온 뱀들은 춤을 추듯 움직인다. 정글 속에 숨어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피리 소리에 취할 것만 같다. 음악의 선율에 모든 것이 녹여 흐를 것만 같다. 자유롭고 조화롭고 평화롭다. 피리 부는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오직 피리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오직 삶을 통해서만 자신을 의미를 만들어낸다.


상담을 공부하며 많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석사졸업장, 국가 자격증과 각종 학회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자격을 가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특히 미술치료를 근거가 없다거나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시선과 싸우기 위해 자격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격증은 나를 증명하지도 보호하지도 못했다. 결국 삶에서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치료 현장에서 가장 큰 난관은 미술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때다. 특히 미술활동을 해 본 지 오래된 부모님이나 성인들은 '미술'이 어떻게 '치료'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너는 어떤 자격을 가졌니?" "너는 나를 도울 수 있니?"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이 나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압박감을 느꼈다. 면접을 볼 때처럼 나를 증명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한때는 설명을 하기 위해 많은 말을 쏟아 냈다. 미술치료는 비언어적인 과정이지만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언어적이고 인지적인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있다. 언어적이고 인지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면 그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상담기법이 이미 많이 존재한다. 굳이 미술치료사가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결국 미술이라는 방법으로,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나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미술이 치료가 되나요?"라고 물으면 일단 경험하게 한다. 미술 재료를 만지고 색을 칠하며 나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나의 당위를 주장하는 것보다 '너'가 이 상황을 이해하고 안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언어적인 설명을 요구했지만 결국 비언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미술이라는 방법으로 미술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림과 자연에 헌신했던 루소처럼, 나를 증명하는 것보다 내 앞에 한 사람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삶에서 알아가고 있다.



'나'를 알아보는 '너'에게 인정받고 싶다.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나'답게 사는 것이 '너'답게 사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미술치료실에는 내가 존재해 온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교과서에는 상담자는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 깨달은(해탈) 자가 아니라면 완전한 중립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한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하나의 세계와 이질적인 세계가 만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경험이 만나는 것이다. 나는 특정 이론에 한 사람을 욱여넣지 않는다. 이런 과거가 있어 현재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단정하지 않다. 한 사람에게는 단 하나이 이론만이 존재한다. 내 앞의 한 사람을 위한 이론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 지난 삶이 경험을 모두 총동원한다. 내가 겪은 일, 내가 만난 사람, 내가 읽은 책, 영화, 그림 등을 총 동원하여 한 사람을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경험으로 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


글을 쓸 때도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미술치료사라고 하면 심리학 이론이나 그림검사를 해석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나보다 심리학 지식에 정통한 심리학자나 상담가들은 많다. 그리고 이미 많은 수가 활동하고 있다. 내가 도슨트라고 하면 화가의 생애나 그림의 배경을 해석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술사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미술사적 지식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도슨트나 미술이론가들은 많다. 나는 오직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 꿈꾸고 상상한 것을 것을 표현하고 싶다. 그런 '나'를 알아보는 '너'를 만나고 싶다. 나의 인정욕구의 끝은 거기에 있다. 나는 피리를 부르며 '너'를 기다린다. '나'의 이야기를 찾고 있는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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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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