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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ug 04. 2023

누구를 위한 그림일까

피테르 브뢰헬 <농부의 결혼식>


피테르 브뢰헬 <농부의 결혼식>, 1528년, 패널에 유채, 114X164cm, 빈 자연사박물관 소장


브뢰헬(1525~1569)은 농민의 생활상을 그린 농민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농민의 생활상이나 서민의 풍속등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농부의 결혼식>은 16세기 네덜란드의 결혼식 피로연 장면을 보여준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식민지 상태로 스페인의 정치적 탄입과 착취가 심했던 시기였다. 가난했던 시기의 생활상이다. 


그림의 주제가 결혼식이라고 했으니 우선 신랑 신부부터 찾아야 한다. 신부는 중앙에 녹색 장막으로 드리운 곳에 앉아 있다. 마치 녹색의 조명이 떨어진 듯 보인다. 신부는 눈을 살포시 감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다. 그러나 신랑이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어렵다. 말쑥한 옷차림으로 보아 술을 따르는 남자라는 해석도 있고 신부의 오른쪽으로 두 번째 옆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젊은 남자라는 해석도 있다. 확실치 않지만 연회장 어딘가에서 음식을 나르며 식사를 대접하거나 함께 어울리고 있을 누군가일 것이다. 


연회장 풍경을 보자. 실내는 길게 벤치를 놓고 음식을 먹고 있고 헛간 입구에는 사람들이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다. 피로연장에 있는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건배를 하거나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당시의 그림에는 음식물을 입에 가져다 넣는 것을 그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그런 규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을 즐겁게 먹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이 말이다. 소박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일. 가난하지만 정겨움을 나누는 것. 그것이 이 결혼식의 모습이다.        


누구를 위한 그림일까?


이 그림은 누구를 위해 그려졌을까? 소박한 삶을 사는 농부에 대한 예찬일까? 가난 속에서도 마음을 나누는 정겨움과 즐거움일까? 농민의 삶에 대한 기록일까?


놀랍게도 이 그림은 농민을 위한 그림이 아니다. 농민들을 그렸지만 이 그림은 농민들의 생활상을 궁금해하는 도시의 궁정사람들을 위해 그려진 그림이다. 예술비평가 하놀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에 브뢰겔의 그림이 "서민의 삶을 위한 서민의 삶이 아닌 소박한 생활에 대한 감상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궁정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궁정사람들에게 농촌 생활과 자연풍경은 또 하나의 이국적 풍경이었을 것이다. 마치 관광지에서 보는 것 같은 이색적 장면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있는 그림


낯선 것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회피하기이다. 이질적인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면서 거부한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기에 낯선 세계와는 만날 수 없다. 두 번째는 거리두기이다. 나와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존재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거리를 둔 채 대상화한다. 이것은 좀 더 세련된 회피이다. 세 번째는 낯선 것들을 수집한다. 때론 신기해 할 수도 있고 흥미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호기심을 채우는 방식으로 낯선 것들을 간직하려고 할 뿐이다. 남은 하나는 낯선 것과 나와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내 삶과 비슷한 삶의 조각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림에 더 애정을 갖게 되고, 낯설다고 느꼈던 것들이 또 다른 삶의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궁정의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소박한 음식과 함께 열리는 피로연장의 모습을 색다르게 느꼈을까? 그럼에도 웃고 떠들며 음식을 나누는 정겨움을 칭송했을까? 아니면 음식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을까?


지혜로운 궁정사람들이라면 이 그림 속에는 삶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좋고 나쁨을 떠난 삶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 바닥에 앉아 손으로 그릇째 핥아먹는 아이의 아쉬운 마음, 모두가 나누어 마실 수 있도록 술을 나누어 담는 세심함,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곳에서도 삶이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세계와 만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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