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배척보다 인정이 되길
(형) 아주 다르다
때로는 숭배, 때로는 조롱으로
더 높게 더 낮게
제 기준의 기대 혹은 판단
가끔 다른 차원의 사람들을 만난다.
'드다르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드다름이 수용될 때, 높낮이는 생기지 않는다.
그저 '아, 저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하고 지나가면 된다.
그런데 수용이 빠진 다름은 기준을 만든다.
내 기준보다 높으면 ‘찬양’하고,
내 기준보다 낮으면 ‘무시’한다.
수용 없는 드다름은 결국, 시선의 권력이 된다.
가끔, 연예인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 그 권력이 가장 잘 드러난다.
드다르게 잘난 사람, 드다르게 예쁜 사람,
드다르게 재주 있는 사람에게
드높은 인성까지 요구한다.
외모, 재력, 능력 — 이미 넘치는데
‘사람 됨됨이’까지 완벽하길 바란다.
숭고하길 원하나.
이런 심리를 볼 때면 실소가 나온다.
‘뭐 이리 바라는 게 많아...’
가끔은 이런 요구가 느껴지는 마음들을 향해 경멸과 환멸이 실리기도 한다.
완벽을 요구하는 심리는 이상하다.
자기 자신에겐 허술하면서,
왜 드다른 이에게는 모든 영역에서
결점 없는 완벽함을 요구할까.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추락은 순식간이다.
연애사 삐끗, 말실수 하나,
버릇없는 표정 하나로도
드높은 곳에서 드낮은 곳으로
비난과 조롱을 동반한 곤두박질이 시작된다.
자기는 평생 그렇게 예의 바르게만 살았을까.
짜증 한 번, 실수 한 번 없이?
자기는 연애하면서 안 헤어지나.
그냥 누구나 살면서 하는 실수,
아니, 어찌 보면 실수가 아닌
그 사람 가치 기준에 따른 선택,
한번쯤 있을 법한 경험치도
잘난 기준치의 드다른 사람에겐 허용이 안된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원래 싸가지 없어 보였어”
“인성도 쓰레기네”
며칠 전엔 “완벽하다”며 환호하던 이들이다.
찬양은 빠르고, 배척은 더 빠르다.
드다르다는 이유로 올라간 사람은,
어느새 내려갈 때까지 미리 정해진 느낌이다.
나는 그 원리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의구심은 든다.
왜 자기도 해내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그리 당당히 요구하는 걸까.
그것도 완벽하라는 식으로.
그 욕망은 동경인가, 질투인가, 아니면 더 철저한 벽 세우기일까.
드다름은 그냥 다름일 뿐이다.
더 나은 것도, 더 낮은 것도 아니다.
그건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 가끔은 연예인들이 받는 마음들이 지긋지긋하고 지독한 폭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드다르다'
짧고 단순한 뜻을 가진 단어가 이런 마음을 건드려 적어봤다.
크게 심오한 뜻은 없다.
주변에 드다르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나요?
드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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