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해서 숨겨지지 않는 것들 중
(자) 짐짓 못생긴 척하다.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
진짜 척은 진짜를 비춘다.
사람은 ‘척’을 한다.
모르면서 아는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잘났으면서 못난 척.
그중 ‘어리눅다’는 짐짓 못생긴 척이란다.
굳이, 왜?
잘생긴 걸 못생긴 척 한다는 건 신기하다.
그렇다고 그 잘생김이 가려질까?
진짜 못생긴 척이 아니라, 힘을 빼고 표정을 일부러 구기는 일이다.
예쁘다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웃음 끝을 삐죽하게 만드는 아이.
너무 잘난 티가 날까 봐, 칭찬이 쑥스러워서, 혹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싶은 순간.
그런 표정은 묘하게 귀엽고, 사람을 방심하게 만든다.
어쩌면 ‘어리눅음’은, 나에게 쉽게 다가오게 만드는 작은 전략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칭찬이 버거운 건지, 스스로의 잘생김을 못 보는 건지, 아니면 칭찬을 인정하지 못하는 또 다른 벽인지.
척은 완벽한 가림막이 되지 않는다.
못난 척하는 얼굴에서도 예쁨은 새어 나오고,
괜찮은 척하는 목소리에도 떨림이 묻는다.
모르는 척하는 눈빛엔 이미 다 알아버린 빛이 스친다.
어리눅음은 묘하다.
숨기려 할수록 더 드러난다.
‘척’은 감추기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리눅다’라는 단어는,
묘한 반전이 전해진다.
당신은 언제, 일부러 조금 못난 척을 해본 적이 있나요?
그 어리눅음은 진짜를 숨기기 위함이었나요, 아니면 더 드러내기 위함이었나요?